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이 탄 승용차가 10일 오후 경의선 도로를 통해 평양으로 가려고 경기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군 관계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파주/김경호 기자jijae@hani.co.kr
[현정은 회장 방북]
클린턴 방북이 결정적…남쪽 비판여론 의식도
금강산·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위기등 난제
클린턴 방북이 결정적…남쪽 비판여론 의식도
금강산·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위기등 난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10일 평양 방문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에도 바람길이 트일지 주목된다.
일단 남북관계를 짓누르던 현대아산 직원 ㅇ씨 억류 문제는 풀릴 것으로 보인다. 북쪽이 현 회장의 방북 요청을 받아들인 것부터가 ㅇ씨 문제는 더 끌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쪽이 ㅇ씨 문제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은 데는 지난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이 주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ㅇ씨와 연안800호 선원들의 석방을 요청했다. 북쪽도 미국 여기자에 이어 ㅇ씨 문제까지 타결함으로써 이후 북-미 대화 구도 진입에 우호적인 여건 조성에 나설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북한 형사소송법에 따른 ㅇ씨 조사기한이 10일로 만료 시점을 맞이한 점, 미국인과 달리 ㅇ씨는 계속 잡아두는 데 대한 남쪽의 비판 여론이 커진 점도 북쪽이 ㅇ씨 문제를 더 끌기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쪽은 미국 여기자 석방 때와 마찬가지로 남쪽 당국 차원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남쪽 당국이 일정한 유감을 표명하고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하자는 정도의 중립적 메시지를 내놓는 선에서 조율이 이뤄질 수 있다.
ㅇ씨 문제 해결이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정상화로 들어서는 ‘입구’가 될지는 아직 전망하기 어렵다. ㅇ씨 문제 말고도 남북은 금강산·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통행제한, 당국 차원의 대북지원 중단 등 난제가 첩첩하다. 이 가운데 현 회장이 우선적으로 북쪽과 협의할 수 있는 사안은 현대아산이 사업자인 금강산·개성관광 재개다. 금강산은 남쪽이, 개성은 북쪽이 각각 중단시켰다. 남쪽 당국은 금강산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북쪽은 6·15와 10·4선언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현 회장이 이 문제와 관련한 실효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돌아온다면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원론적인 협의에 그친다면 남북관계는 앞으로도 당분간 소강 상태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 될지를 가늠해볼 잣대는 현 회장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김 위원장 면담 계획 등은 미리 잡혀있지 않다”면서도,“지난 2007년 10월 말 원산에서 백두산관광사업에 대해 합의할 때도 ‘답사하러 간다’고 갔다가 좋은 성과를 가져온 경험이 있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북쪽의 현 회장 초청은 일단 남북관계를 관리 모드로 끌고가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전면적 ‘통미봉남’보다는 ‘통미 속 제한적 통남’을 통해 실리를 챙기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경협은 유지하되 당국과는 대치를 이어가는 ‘통민봉관’ 구도가 될지, 당국간 관계까지 푸는 쪽으로 나아갈지는 남쪽 당국의 태도를 봐가며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북쪽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를 우선적으로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현 회장의 방북은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조금 더 진전시키는 것은 남쪽 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남쪽이 국제적 대북 제재 유지를 강조하며 북쪽으로 현금이 들어가는 ‘금강산관광 재개 불가’ 방침을 유지하거나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에 늑장을 부리는 등 기존의 냉전적 태도를 고수할 경우, 모처럼의 ‘해빙’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현대아산 직원 억류 및 협의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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