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김정일 면담 또 불발
김 “주도권 잡으려는 특유의 협상전략”
현 “금강산관광 재개 절박한 면담 요청”
김 “주도권 잡으려는 특유의 협상전략”
현 “금강산관광 재개 절박한 면담 요청”
평양을 방문 중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이 잇달아 미뤄졌다. 예측을 불허하는 김 위원장의 외빈 접견 방식 때문이다.
지난 10일 방북한 현 회장은 애초 12일로 잡았던 귀환일을 13, 14, 15일로 세 차례 연장했다. 11, 12, 13일 면담 모두 별도 통보없이 불발됐다. 김 위원장의 이런 접견 방식은 기본적으로 경호를 위한 것이지만, 특유의 협상전략으로도 풀이된다. ‘뜸들이기’를 통해 자신의 출현이 가져올 효과를 극대화하고, 면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러시아 등 주요 우방국과의 정상회담을 제외하면 중국이나 미국 쪽 고위 인사들의 방북 때도 사전에 면담일정을 확약해주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4월 방북했던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도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이런 일방성은 국제적 외교관행에 어긋난다.
일부에선 잇단 체류 연장에 비춰 현 회장의 김 위원장 면담이 결국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현 회장에 대한 북쪽의 초청장은 출발 날짜만 10일로 적시했을 뿐 귀환 날짜는 없었다”며 “김 위원장 면담이 아예 안 된다면 북쪽이 잇단 체류 연장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회장이 13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것도 김 위원장 면담을 위한 사전 조율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른 소식통은 “김 부장을 만나는 것으로 끝났다면 14일 예정대로 돌아왔겠지만, 현 회장은 김 부장을 만나고도 체류를 연장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번 방북에 대북사업 재개의 희망을 건 현 회장이 강하게 김 위원장 면담을 요청하며 일종의 ‘버티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 회장은 이번 방북을 통해 유성진씨 귀환이라는 1차 성과를 거뒀지만,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등 사업 현안을 풀기 위해선 체류 일정을 몇차례 연기해서라도 김 위원장 면담을 성사시켜야 할 절박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지켜본 뒤 현 회장에게 대남 메시지를 전달할 생각으로 일정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8·15 경축사로 드러날 남쪽의 대북 기조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면 그 내용이 결정되기 전인 13일까진 현 회장을 만났어야 했다는 반론도 있다. 뒤늦게 면담이 이뤄지더라도 김 위원장의 뚜렷한 대남 메시지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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