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날아든 ‘북한 편지’
“비핵화 부정한 적 없다”며 미국쪽 요구 수용 자세
‘우라늄 농축’ 공개 언급…거꾸로 대화 촉구 ‘역공’
“비핵화 부정한 적 없다”며 미국쪽 요구 수용 자세
‘우라늄 농축’ 공개 언급…거꾸로 대화 촉구 ‘역공’
북한이 유엔 주재 상임대표 명의로 지난 3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보낸 편지는, 미국이 대화의 전제로 내세웠던 조건들을 일부 수용하면서, 동시에 미국에 ‘대화냐 제재냐’ 가운데 양자택일할 것을 거꾸로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4~5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전후로 여러 채널을 통해 북-미 직접 대화를 미국에 촉구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석방 등 남북관계 경색 해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북-미 대화의 여건 조성 작업도 병행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이런 시도를 긍정 평가하면서도 북한의 비핵화라는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며 일정하게 선을 그어왔다. 대신, 미국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정치적 약속’과 ‘6자 회담 복귀에 대한 동의’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걸었다.
북한의 ‘편지’는 이런 미국의 요구에 일정하게 조응하고 있다. 우선 비핵화 의지 표명과 관련해,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와 세계의 비핵화 그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때 김정일 위원장이 비슷한 취지의 말을 전달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문서를 통해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또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1874호에 반발해 북한이 지난 6월13일 외무성 성명에서 “이제 와서 핵포기란 절대로, 철두철미 있을 수 없는 일로 되었다”고 주장한 것에 비하면 많이 물러선 모양새다.
두번째 대화의 조건인 ‘6자 회담 복귀 동의’와 관련해서도 “6자 회담 ‘구도’를 반대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6자 회담이 5대 1로 북한을 압박했기 때문에 거부했다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회담 형식과 관련해 북한이 유연성을 내비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북한은 편지에서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겠다는 미국의 이른바 ‘투 트랙 전략’에 대해선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제재와 대화 가운데 고르라고 ‘역공’을 펼쳤다. 풀루토늄을 추출해 무기화하고 있고 우라늄 농축시험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섰다고 공표한 것은, 대화를 미룰수록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북-미 대화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지금도 핵 프로그램은 진행되고 있고, 협상이 늦어질수록 그만큼 추출된 풀루토늄량이 많아진다는 점을 미국에 상기시킨 것이다.
기술 수준이 베일에 가려진 우라늄 농축은 예민한 쟁점에 속한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경수로 발전’용이라고 밝혔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농축 과정을 반복하면 군사적으로도 전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급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 보유 여부를 둘러싼 북-미간 논란은 2002년 ‘2차 북핵위기’의 기폭제 노릇을 하기도 했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숨어서 해야 할 일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협상카드를 극대화하기 위한 ‘언술 외교’의 일환”이라며 “북의 우라늄 농축 수준은 협상과 대화를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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