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단체 “인도적 지원도 대부분 불허” 부글부글
경협기업 “사업승인 늦어져 위약금 내야” 울상
경협기업 “사업승인 늦어져 위약금 내야” 울상
한반도 정세가 변화의 길목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정부는 인도적 대북 지원을 위한 방북과 물자 반출조차 극히 일부만 선별 승인하는 등 압박성 대북 정책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민간단체와 남북 경협 기업들은 22일 앞으로 닥쳐올 정세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유지해야 할 남북관계의 기본 토대가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는 경고음을 울리고 나섰다.
56개 인도적 대북 지원 단체들의 모임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는 이날 정부의 대북 지원 제한 조처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정부에 “북한 주민들의 생존이 걸린 대북지원을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북민협이 집계해 이날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4월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정부의 방북 제한 조처가 시행된 이래 이뤄진 인도적 지원 관련 방북 신청 46건 가운데 승인이 난 것은 12건에 그쳤다. 신청 인원 345명 중 실제 방북 승인을 받은 인원은 62명에 불과했다.
또 민간단체가 자체 모금했으나 정부의 반출 승인을 받지 못해 인천항에 쌓아둔 대북 지원 물자는 비료, 엑스레이 현상기와 마취기 등 의료기기, 양수기 등 24억4500만원어치에 이른다.
북민협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창빈 월드비전 회장 보좌관은 “현대아산 직원이나 연안호 억류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정부는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걸어 제한을 풀지 않고 있다”며 “지난 8월 이후 식량과 긴급 의약품 등의 반출을 선별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월드비전의 밀가루 50t 반출은 불허하는 등 기준과 원칙조차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윤성 나눔인터내셔널 대표는 “정부가 인도적 지원은 정세와 무관하게 계속한다면서도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업을 불허하는 것은 사실상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며 “이때문에 민간 지원 분야마저 무너지면 이후 정세가 바뀌어 정부가 남북관계를 재개하려고 해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여전히 방북 자체를 가로막고 있는 남북경협 기업들도 정부가 모호한 원칙으로 남북관계의 경제적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지난 7월 ‘경협 문제가 앞으로 풀리지 않겠느냐’는 통일부의 말을 믿고 내년도 위탁가공 계약을 북쪽과 맺었지만, 그 뒤 통일부가 사업승인을 내주지 않아 100만달러(약 12억원)대의 위약금을 물게 됐다”고 전했다.
대북 경협 기업들의 모임인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가칭) 김정태 회장은 “평양에 수백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세웠으나 정부의 방북 차단으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며 “이렇게 경협 기업을 다 죽이면 도대체 어떻게 ‘비핵·개방·3000’을 하고 ‘상생공영’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정부는 북쪽이 근본적인 핵포기 의사를 드러내기 전까진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태도다. 한 당국자는 “유엔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이라 방북과 경협을 전면적으로 풀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창빈 북민협 비대위원장은 “북한 핵실험 이후 유엔에서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채택했지만 대북 인도적 지원은 예외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태 회장은 “우리가 유엔의 제재 대상 기업과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연계하는 것은 사실상 정부의 법규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