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이산가족 석영순(78·가운데)씨가 29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남쪽에서 온 동생 태순(74)·창순(65)씨를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남쪽가족 만난 ‘국군’ 출신 3명
추석 계기 이산가족 2진 상봉행사 첫날인 29일 북쪽 상봉단에 포함돼 있는 ‘국군’ 출신 3명은 남쪽에선 모두 전사자로 분류됐거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국군포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남쪽의 동생 석태순(74), 창순(65)씨와 상봉한 북쪽의 석영순(78)씨는 1950년 8월 동네 청년 10여명과 함께 국군으로 징집돼 전방 사단에 배치됐다. 그러나 “살아서만 돌아와 달라”고 염원했던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전쟁 발생 이듬해인 1951년 3월 가족들은 육군본부로부터 전사 통지서를 받았다. 결국 가족들은 97년 5월 육군본부에 위패신청을 했고, 영순씨는 국립묘지에 봉안되기까지 했다. 영순씨의 아버지는 남쪽에서 보훈대상으로 지정돼 숨을 거두기 전까지 연금을 받았다고 한다. 동생 태순씨가 이날 “국립묘지에 형님 위패가 봉안된 이후 제사를 지내왔다”고 하자, 영순씨는 “살아 있는 사람을 보고 제사를 지내면 되냐”며 크게 웃었다.
서울이 집이었던 북쪽의 리윤영(74)씨는 51년 1·4후퇴 직전, 피난길에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 대신 자진해 17살의 나이로 국군에 입대했다. 윤영씨 가족들은 전투원이 아닌 노역 관련 업무로 입대한 윤영씨가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후 소식은 끊겼다. 리씨의 남쪽 동생 찬영(71)·대영(67)·진영(65)씨는 “형이 죽었다고 생각해 호적 정리도 끝낸 상황이었다”고 울먹였다.
맏아들을 자기 대신 군대에 보내야했던 아버지는 평생을 자책감 속에서 살다 13년 전 숨을 거뒀다. 동생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형님을 찾았다. 형님이 살아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제일 아쉽다”고 하자, 윤영씨의 얼굴엔 회한어린 표정이 스쳐갔다.
8사단 민간보급대 출신의 박춘식(85)씨는 남쪽의 아들 삼학(67), 이학(64)씨와 만났다. 박씨는 남쪽 아들들에게 북에서 새로 결혼해 낳은 5남매의 사진을 보여줬고, 삼학씨는 “아버지와 연세가 같으신 동네 어른들은 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북쪽에 살아계시다는 것만으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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