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거듭한 남북적십자 접촉
남 다음달 추가 이산상봉 제안에 북 “성의있는 조처”
북, 규모·품목 안밝혀…정부 ‘소규모 인도 지원’ 검토
남 다음달 추가 이산상봉 제안에 북 “성의있는 조처”
북, 규모·품목 안밝혀…정부 ‘소규모 인도 지원’ 검토
북쪽이 16일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남쪽에 공식 요청함에 따라, 이 문제가 당분간 남북관계의 진퇴를 가를 핵심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이날 실무접촉을 계기로 남북관계 구도는 좀더 분명해진 측면이 있다. 남쪽은 추가 이산가족 상봉을, 북쪽은 대북 지원을 각각 주요 요구사항으로 테이블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남쪽이 바라는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북쪽이 제기한 대북 지원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줘야 하는 일종의 ‘연계’ 구도가 확실해진 것이다.
문제는 북쪽이 바라는 규모와 품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남쪽이 원하는 바를 갖기 위해 얼마나 내놓을 수 있는지 먼저 제시하라는 게 이번에 드러난 북쪽의 자세다. 대북 지원에 대한 정부의 기본 태도는 나와 있다. ‘시급한 인도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하고 대규모 지원은 상황을 봐가며 남북간 협의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북쪽의 요청이 적십자 실무접촉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적십자 차원에서 처리할 수 있는 소규모 지원부터 시작하겠다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선 남쪽이 적십자 차원에서 옥수수 1만~3만t 수준의 지원을 제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남북은 비료 30만t 규모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을 암묵적으로 연계한 바 있다. 북쪽은 이런 전례를 따라야 한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남쪽이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의 진전을 바란다면 더 큰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후 지원 규모 등을 두고 남북 사이 협의가 난항을 거듭하면서 인도적 현안 해결도 지연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정부는 2009년도 남북협력기금 6437억원을 대북 직접지원 예산으로 책정했다. 쌀 40만t, 비료 30만t을 각각 지원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북핵 상황이 진전돼야 대규모 지원이 가능하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당장 이를 대북 지원에 활용할 가능성은 낮다.
더구나 이런 대규모 지원은 적십자 접촉 차원의 남북협의를 통해서는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정부 안에선 통일부 장관과 북쪽 통일전선부장급이 참여하는 고위급 회담을 통해서나 논의될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과거에도 당국 차원의 대규모 식량지원은 장관급 회담에서 결정되곤 했다. 그러나 남쪽은 앞으로는 고위급 회담을 통해 핵문제도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 실제 고위급 회담으로 넘어가기까지는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이 점 역시 대규모 식량지원을 당장 거론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다만 북핵 관련 북-미 대화가 진전되고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안팎의 여론이 강해질 경우, 정부도 대응 차원에서 대규모 지원 재개와 인도적 현안의 획기적 해결을 맞바꾸는 시도에 나설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이때도 분배 투명성 및 모니터링 강화 등 지원 조건을 둘러싼 남북의 견해차가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