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투명성 외치더니 비선 동원
정부, 언론노출에도 시큰둥
“보안 생명인데” 진정성 의심
투명성 외치더니 비선 동원
정부, 언론노출에도 시큰둥
“보안 생명인데” 진정성 의심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남북 간 사전 접촉설이 연일 흘러나오고 있다. 가게 문도 안 열었는데 손님부터 끌어모으는 이상한 모양새다.
지난 20일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접촉설에 이어 22일엔 ‘남북 고위 관계자 간 싱가포르 접촉설’이 흘러나왔다. 정부가 내년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초청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도 돌고 있다. 처음에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남북 접촉설을 강하게 부인하던 정부는 싱가포르 접촉설에 대해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태도로 변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이런 모호한 태도는 ‘비밀접촉설’의 진위를 떠나, ‘북한과 막후 비밀접촉은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할 것’이라던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의 거듭된 호언장담을 무색하게 한다.
그럼에도 최근에 떠도는 설엔 주목할 대목이 있다. 우선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북쪽과 접촉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 정통한 소식통은 23일 “언론 보도 이전부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를 고위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둘째, 남쪽 대표가 통일부나 국가정보원 같은 정부의 공식 조직 소속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김양건 부장을 만난 우리 당국자는 없다”고 말했다. 민간인 신분의 인물이 나섰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은 셈이다.
일단, 남북이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환영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복잡하게 얽힌 남북관계를 풀려면 정상 간 만남을 통한 ‘교통정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미 관계가 해빙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의 두 당사자인 남북이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비밀접촉을 둘러싼 상황은 문제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선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당국자가 아닌 인물이 나섰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통일부 등 정부 공식 조직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면 말고’ 식으로 흐를 수 있어 남북 접촉의 무게감과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상호 불신이 깊은 남북 간에 정상회담 추진은 보안이 생명이다. 추진 과정이 중간에 공개될 경우 되레 불신만 키울 수 있고, 새 협상 창구를 만드는 데도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북 모두 미국·중국 등의 주문을 고려해 ‘면피용’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모양새만 갖추려거나, 이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싱가포르 접촉설에 대해 정부가 상대방과 신뢰관계 및 보안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지 않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한 것에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북쪽의 22일치 <로동신문>도 “북남 사이에 여러 갈래의 대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남북 접촉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남북이 이런 식으로 외부에 노출하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초기엔 여러 비공식 접촉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제 남북 장관급 회담이나 특사 파견 등을 통해 접촉을 공식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용인 이제훈 기자 yyi@hani.co.kr
이용인 이제훈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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