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상 남북 교전 비교
[7년만의 서해교전] 1·2차 연평해전과 다른점
‘대치’시간 짧아졌으나 우발적 충돌 위험 고조
‘대치’시간 짧아졌으나 우발적 충돌 위험 고조
10일 벌어진 서해상 남북 해군 사이 교전에선 과거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는 다른 교전규칙이 적용됐다.
두 차례 연평해전에서 남쪽 해군은 ‘경고방송→시위 및 차단기동→경고사격→위협사격→조준 및 격파사격’ 등 5단계로 된 교전규칙을 따랐다. 남북 사이 무력충돌을 가급적 피하고 확전을 막기 위해 교전 행위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1999년 6월15일 1차 연평해전에선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남쪽 함정의 경고방송에도 월선을 되풀이하고 있던 북쪽 함정들을 남쪽 함정이 직접 선체로 밀어내는 ‘밀어내기’ 작전이 펼쳐졌다. 버티던 북쪽 함정들이 이에 맞서 먼저 소총과 함포로 사격을 가해 오자, 남쪽 함정들도 즉각 대응사격에 나섰다. 14분여 치열한 교전 끝에 북쪽은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중형 경비정 3척과 소형 경비정 2척이 파손됐다. 사망자도 30명이 넘게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남쪽은 9명이 다치고 초계함 1척과 고속정 4척이 경미한 선체 손상을 입는 데 그쳤다.
그러나 2002년 6월29일 발생한 2차 연평해전에선 남쪽 해군의 피해가 1차 때보다 컸다. 20분간 이어진 교전에서 남쪽 해군은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쳤다. 또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격침됐다. 북쪽은 1차 연평해전 때 남쪽의 밀어내기 작전을 허용했다가 근접전에서 큰 피해를 보자, 이때는 남쪽 함정이 접근할 틈을 주지 않고 기습적으로 선제공격을 했다. 당시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쪽 경비정 2척은 방송으로 퇴각을 요구하는 남쪽 고속정 편대를 향해 갑자기 85㎜와 35㎜ 함포 사격을 했다. 남쪽 고속정도 40㎜ 함포와 20㎜ 벌컨포로 대응했지만 큰 피해를 봤다.
2차 연평해전 뒤 복잡한 교전규칙 때문에 선제공격을 허용했다는 보수세력의 비난이 제기됐고, 결국 군은 2004년 교전규칙을 5단계에서 ‘무력시위→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했다. 또 이명박 정부 들어선 현장 지휘관이 신속한 대응을 위해 상부 보고 없이 즉각적으로 무력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했다. 중층적 교전 방지 시스템이 약해지고, 그만큼 우발적 군사충돌·교전의 위험이 높아진 셈이다.
10일 벌어진 교전에선 바뀐 교전규칙에 따라 남쪽 고속정이 시위기동과 경고통신을 한 뒤 곧바로 북쪽 경비정의 전방에 경고사격을 했다. 북쪽이 이에 맞서 선체를 향해 직접 사격을 하자, 남쪽도 다시 대응사격을 해 북쪽 고속정을 맞혔다. 2004년 교전규칙 변경 이후 북쪽 경비정 월선에 대응해 해마다 3~6차례씩 서해상 경고사격이 이뤄졌으며, 올 들어선 처음이라고 해군은 밝혔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사이 ‘일전불사’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이번 교전이 벌어졌다는 점도 이전 연평해전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북쪽은 올해 초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전면적 대결태세 진입’을 선언하고 서해상의 충돌을 경고했다. 남쪽도 이에 맞서 정옥근 해군 참모총장이 지난 6월15일 “적이 우리의 손끝 하나를 건드리면 적의 손목을 자르겠다는 각오로 적과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주문해, ‘확전 방지’보다는 ‘초전박살’에 강조점을 찍어 왔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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