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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천안함 관련 ‘국가적 재조사’ 절실하다

등록 2010-06-21 18:51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민원실에서 시민 1100명으로부터 서명 받은 천안함 12대 항목 정보공개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민원실에서 시민 1100명으로부터 서명 받은 천안함 12대 항목 정보공개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부실한 합조단 발표로 국론분열 양상 심각

갈등 해소 못하면 한반도 전체 미래 ‘암울’
지난 5월20일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발표를 둘러싼 남남대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로 놔둔다면 국론분열이 심화하고, 이에 따라 큰 국력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런 비극적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함으로써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합조단의 천안함 조사 발표는 현재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에서 크게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합조단의 천안함 조사 발표가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참여연대가 제기한 8가지 의혹이다. 하지만 참여연대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진보적 단체와 언론매체들은 합조단 발표만으로는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는 점을 단정하기 어렵고 △또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도 확정짓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특히 발표가 6·2 지방선거에 맞춰 진행되는 등 발표내용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합조단의 발표는 민간인들과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조사단까지 포함된 조사단이 벌인 공신력 있는 조사였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도대체 어뢰 피격이 아니면 어떻게 천안함이 두동강이 날 수 있으며, 또 북한이 아니라면 그 누가 어뢰를 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두 가지 인식의 충돌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 앞에서 벌어졌던 보수단체들의 시위다. 하지만, 문제는 참여연대 앞에서 벌어진 시위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천안함 사태와 관련된 ‘합리적인 의문’에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합조단은 ‘폭발에도 생생한 마커펜글씨 1번’과 ‘어뢰에도 깨지지 않는 슈퍼형광등’ 등 기초적이고 명백해보이는 질문에도 ‘똑 부러지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 서로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갈등이 극단화할 경우, 국가가 감수해야 할 국력 손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우선 천안함과 관련한 갈등이 악화돼 커다란 폭력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전체 국력을 모아도 헤쳐가기 어려운 최근 국제 정세를 ‘반쪽 국력’으로는 헤쳐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가 이런 점을 빌미로 의혹을 제기하는 진보진영에게 국가보안법 등을 들이대며 강하게 탄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갈등의 골만 깊게 할 뿐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가 다시 천안함과 관련해 지금까지 제기됐던 의혹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재조사하고 그것을 통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만이 심각한 상황에 이른 국론분열 상태를 종식시키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진영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사람이 위원회에 포함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재 구성된 조사단은 이름은 민군 합동조사단이지만, 군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사단이라는 데 지적이 많다. 천안함과 관련해 감사대상이기도 했던 군이 조사의 주체로 나섰다는 데서 설득력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최문순 의원은 지난 5월31일날 낸 보도자료에서 “민간위원이라지만 눈치밥 신세 민간위원이 압도적”이라며 조사에서 민간위원들이 제 구실을 못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은 “현재 국회에 천안함 특위가 구성돼 있지만 제 구실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국정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팀장은 이외에도 남북의 합동조사나 중국이 제안한 남북한과 중·미의 4개국 공동조사도 국민들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큰 사건이 터지더라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국민의 납득과 동의를 얻는다면 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설 수 있다.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과 관련해 공정한 조사단을 꾸렸던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수많은 예산을 투자했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하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으나, 중립적이고 권위있는 인사들로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 박사다. 파인만 박사는 그 독립적인 성격 탓에 개별적인 의사를 보다 많이 표출하는 등 위원회와 갈등을 빚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0.28 인치의 오링이라는 작은 부품 하나의 결함이 사고 원인임을 밝혀냄으로써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데 수훈갑이 됐다.

하지만, 의혹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이를 규명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할 때 그 대가는 엄청나다. 2004년 마드리드에서 일어났던 폭발사고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대응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폭탄테러는 불과 총선 3일 전에 일어났고, 집권 우파 국민당은 이 폭탄테러를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돌렸다. 어떻게 해서든 이라크 전쟁과의 관련성이 없음을 강조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처였다. 당시 스페인은 이라크전에 1300명의 병력을 파병하고 있었다.

하지만, 총선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 알 카에다가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국민당 정부는 역풍을 맞았고 총선에서 야당인 사회노동당이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은 천안함 문제는 남한 내부의 문제를 넘어 동북아 안정과 밀접히 관련된 주제인 탓에 더욱 더 철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편집장은 “20세기에 일어났던 전쟁과 갈등 가운데 초기의 잘못된 조사 탓에 전쟁으로까지 비화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베트남전의 촉발점이 됐던 통킹만 사건이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현 단계에서 섣부르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북한이 관련돼 있는지도 보다 철저한 조사만이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다만, 지금 확실한 것은 합조단의 부실한 발표가 나라를 두쪽으로 갈라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의 국론 분열과 국력 손실을 막기 위한 정부의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 ‘천안함과 2010 한반도’는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론 분열 양상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 ‘천안함과 2010 한반도’는 이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합니다. 합조단의 천안함 조사 발표 내용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합리적인 의혹 제기 등도 함께 다룸으로써 천안함과 관련한 토론의 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또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천안함 해결을 위한 각종 토론회 등을 조직함으로써, 현재의 국론 분열 상황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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