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국들 힘겨루기 일관
러 ‘연평도 포격’ 뺀 초안, 미·영·프·일 모두 “반대”
‘포격 강력규탄’ 영국안은 중국이 “북 자극” 거부
러 ‘연평도 포격’ 뺀 초안, 미·영·프·일 모두 “반대”
‘포격 강력규탄’ 영국안은 중국이 “북 자극” 거부
19일(현지시각) 한반도 긴장 고조와 관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회의는 미국 등 서방국가와 중국·러시아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팽팽히 맞서 8시간30분 내내 힘겨루기로 일관했다.
이날 오전 11시5분께 시작된 회의는 애초 서로간의 입장차가 워낙 커 금방 끝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 뚜껑을 열자 치열하게 맞붙었다. 이는 안보리 이사국들이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또 이날 회의에서 서방과 중국·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규탄’ 여부로 의견이 갈렸지만,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모두 원치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이날 회의 소집을 요구한 러시아는 남북한 양쪽에 ‘최대한의 자제’를 촉구하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남북에 특사를 파견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초안을 제출했다. 이 초안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현재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의 연평도 공격을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은 성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15개 이사국 중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서방 진영의 입장을 따랐다.
영국은 러시아의 초안과 별도로 “지난 11월23일 연평도 포격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이 담긴 별도의 초안을 회람시켰고, 이에 러시아가 ‘연평도’라는 명칭을 삭제한 채 “11월23일 사건을 규탄한다”는 내용으로 수정해 최종안으로 다시 회람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이에 반대했다. 한국이 무리하게 연평도에서 포사격 훈련 계획을 강행해 위기가 증폭되고 있고, 북한을 자극하면 한반도 위기가 더욱 악화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규탄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며 중국이 합의를 거부해 결국 합의안 도출은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북한 대표는 당사국 자격으로 비공개 회의에 초대돼 각각 입장을 개진했다. 한국의 박인국 대사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은 한국에 대한 공격행위”라며 “이를 규탄하지 않는 성명 채택은 용납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또 연평도 포사격 훈련도 한국 영해에서 이뤄지는 정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신선호 북한 대사는 “북방한계선(NLL)은 일방적으로 그어진 것이며, 남북 분쟁지역 해상에서의 사격훈련은 북한 영해를 침입한 것”이라며 “우리 영해에 포탄이 날아오는데 어떻게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순회 안보리 의장인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남아 있는 견해차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한반도 긴장과 관련된 안보리 논의가 이른 시일 안에 진전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날 한국의 사격훈련의 규모가 축소된 것은 안보리의 8시간 마라톤 회의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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