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대령에 김대업 비호 질문
조사 과정서 정보출처 등 노출
조사 과정서 정보출처 등 노출
최근 군에서 논란이 된 ‘전 정권 장교 살생부’와 관련해 국가정보원 요원이 징계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 요원은 이른바 ‘살생부’의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유출(직무상 취득한 비밀 누설)한 혐의로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전해져, 군 당국의 설명과 달리 살생부가 실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 “살생부 진위 확인 과정서 기밀 유출” 군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 ㅇ씨가 ‘살생부’의 존재와 관련해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11일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국방부를 담당하던 요원이 기밀 유출 혐의로 정직 처분을 받고 본부 대기중”이라며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밀을 유출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일으킨 책임을 물어 매우 높은 수위의 징계가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육사 출신인 ㅇ 요원은 이명박 정권 출범 뒤 청와대에 근무했으며 1년여 전부터 합참을 담당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군 안팎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ㅇ 요원은 지난해 10~11월께 ㅇ 예비역장군, ㅈ 대령과 접촉했다. ㅇ 요원은 이들에게 ‘기무사 자료에 김대업 비호세력으로 분류돼 있고 정보 출처는 ㄱ 장군이다. 지난 2002년 ㅇ 예비역장군(당시 준장)이 ㄱ 장군(당시 대령)을 불러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김대업씨에 대한 고소취하를 종용했으며 이 자리에 ㅈ 대령도 동석한 것으로 돼 있는데 사실이냐?’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ㅇ 예비역장군은 며칠 뒤 ㄱ 장군을 불러내 ‘왜 나를 음해하느냐’며 말다툼 끝에 폭행했고(쉬쉬한 ‘별들의 폭행사건’…무슨 일 있었기에 <한겨레> 4월22일치 5면), ㅈ 대령은 ㄱ 장군에게 연락해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이에 ㄱ 장군은 이를 부인한 뒤 국정원과 기무사에 항의했고, 국정원은 ㅇ 요원의 합참 출입을 정지시키고 기밀 누설 혐의로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 한쪽은 확실한 거짓말…“진실 규명해야” 결국 2002년 대선을 앞두고 ㄱ 장군에게 김대업에 대한 고소취하를 종용하는 데 함께했다는 게 살생부에 오른 근거가 된 셈인데, 이 자리의 성격을 두고서는 서로 말들이 엇갈린다. ㄱ 장군은 “ㅇ 예비역장군이 고소 취하를 종용했으며, ㅈ 대령을 김대업 비호세력이라고 음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ㅇ 예비역장군과 함께 나온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ㅇ 예비역장군은 “ㄱ 장군이 고초가 크다고 해 육사 선배로서 밥 사준 게 전부”라고 반박했다. ㅈ 대령도 “ㅇ 예비역장군과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다. 황당하다”고 말했다.
서로 말이 다른 만큼, 2002년 식사 자리의 성격과 참석자는 누구였는지, 또 그에 근거해 살생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됐는지 등에 대한 객관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당국은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분위기다. 기무사 고위 관계자는 “(살생부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승진에서 탈락한 이들이 퍼뜨리곤 하는 헛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과거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인사비리 수사 때 정보기관의 음해성 자료가 인사에 영향을 끼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는데 아직도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며 “이번 기회에 의혹을 샅샅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살생부와 관련해 징계를 받은 ㅇ 요원의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ㅇ 요원은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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