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일어난 총기사고와 이를 전후로 자살사건이 잇따르면서 해병대가 우리 사회 이슈의 중심에 서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며 가장 씁쓸해할 이는 아무래도 해병대 출신 예비역이 아닐까. <한겨레>는 2000년대 초반 해병대사령부에서 일선 초소까지 두루 근무했다는 한 예비역 해병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이번을 계기로 해병대의 고질적인 악습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해병대를 좋아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나?
“해병2사단, 해병대사령부, 기타 파견근무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다.”
-해병대에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한마디로 구타와 가혹행위 등 저변 문제다. 구타나 가혹행위가 너무 심한 바탕에 해병대만의 저변문화란 게 있다. 자원병으로만 꾸려지다 보니, 터프한(거친) 이들이 많다. 마초이즘(남성우월주의)도 강하고. 내 경우에는 서울 출신, 이른바 명문대를 나와 나약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초반에 많이 힘들었다.”
-지역과 학교가 무슨 문제냐?
“터프함이 강하다 보니 서울 출신은 ‘계집애 같다’는 시선으로 대하더라. 자대 전입 당일 내무반에서 고참 중 하나가 ‘너 아쎄이(신병)냐? 고향은 어디야?’라고 묻더라. ‘서울입니다’라고 답했더니 ‘이 꽉 물어’라고 말하더니 주먹을 날리더라. 대학을 두고서도 ‘해병대가 언제부터 가방끈 긴 애들이 왔냐’며 빈정대고….”
-저변문화라니, 다른 실례는 없나?
“2000년 12월○일. 아직 날짜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해병2사단 5연대 ○○대대 ○○중대에서 김○○ 일병이 자살했다. 수건을 두 갈래로 찢어 건조장에서 목을 맸다. 일병 휴가 복귀 3~4일 만에 자살했는데 신병 비관에 따른 자살로 처리됐다. 하지만 병사들 사이에서는 휴가 나가기 전에 소초(소대 건물) 등에서 가혹행위, 초소에서는 성적인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말이 돌았다.”
-어떤 가혹행위를 말하나?
“해병대는 챙겨줄 때는 진짜 잘 챙겨준다. 휴가 때 그렇다. 휴가가 결정되면 휴가비를 모아 주고, 전날 굶기기도 한다. 짬밥 대신 나가서 맛난 것 많이 먹으란 의미다. 해병대원들이 휴가 때 ‘상륙한다’는 은어를 사용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여럿이 함께 휴가를 나가면 제일 먼저 윤락가를 찾는다. 그런데 남성성을 키워야 한다며 전날 해주는 의식이 있다. 일명 ‘×빠따’라고, 사워장에서 칫솔로 성기를 때린다. 칫솔을 뒤로 한껏 꺾었다가 내려친다. 남성성이 강해지라는 의미다. 김○○ 해병은 이런 가혹행위 말고도 초소에서도 좀 당했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초소에서도 가혹행위가 있나?
“물론이다. 티오디(TOD·열상감시장비) 관측 초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자신의 성기를 입으로 빨도록 했는데, 후임병이 거부했다. 선임병이 ‘이 새끼가~’라며 위협하자, 후임병이 견디다 못해 선임병을 때렸다. 그 과정에서 선임병이 옆 초소에 도움을 요청했고, 하극상에 대한 처벌을 두려워한 후임병은 탈영을 했다. 결국 둘 다 구속됐다. 이번에 사고가 터진 8연대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런 문제들은 왜 고쳐지지 않을까?
“해병대를 지키는 것은 병이라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인계사항 중 첫째가 (장교나 부사관이 아닌) 선임병들에 대한 대우다.”
-인계사항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어떤 지시를 내려 후임에게 인계하는 것이다. 일병 5호봉(5개월째)이 되면 인계사항을 내릴 수 있었다. 기(수)열외도 이 가운데 하나다. 고참 일병이 ‘야, 내 밑으로 언제부터 아무개 상병은 무시해’라는 인계사항을 내리면 다 따라야 한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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