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 비리사건 흐름도
헌병 공금횡령 투서 중령에 ‘감봉 3개월’
“공익제보자에 해당” 권익위 의견도 무시
“공익제보자에 해당” 권익위 의견도 무시
지난 4~5월 군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헌병 병과 비리사건과 관련해 비리 내용을 군 당국에 제보한 현역 장교가 징계를 당했다. 군 당국은 ‘공익제보자로 판단된다’는 국민권익위 의견조차 무시한 채 익명 제보로 군기강을 문란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강행했다.
육군 관계자는 31일 “최근 육군본부에서 헌병 비리사건 제보자인 황아무개 중령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감봉 3개월 징계가 결정돼 본인에게도 통보됐다”며 “본인이 항고 여부를 고민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징계 혐의는 언론접촉과 보안규정 위반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이아무개 준장이 육군 중앙수사단장(헌병 병과장)에 취임한 뒤 지난해 말~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국방부에 익명투서가 접수됐다. 이 준장이 수방사 헌병단장 시절 공금을 횡령하고, 고위층에 로비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형사처벌할 수준의 사안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 장군은 전역지원서를 냈다. 군 당국은 이어 제보자 색출에 나서 이 전 장군으로부터 비자금 조성 지시를 받았던 박아무개 소령의 하소연을 들은 황 중령이 제보자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지난 4월 이 장군의 횡령 혐의가 명확한데도 군당국이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언론 보도가 터져나왔고, 군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했다. 군검찰은 지난 6월2일 “횡령액이 4700만원에 이르는 등 제보 내용 상당 부분이 진실로 확인됐다”며, 이 전 준장을 형사처벌하기 위해 민간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군검찰은 이와 함께 황 중령과 승장래(육군 소장) 조사본부장에 대한 징계를 의뢰했다. 각각 익명의 투서로 군기강을 문란케 했고(군인복무규율 위반), 1차 수사 때 혐의를 확인하고도 의원전역 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직무유기)는 이유에서였다.
국방부의 이런 방침에 따라, 육군이 부하 장교의 하소연을 듣고 본인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는 사안에 총대를 멘 황 중령을 처벌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권익위가 “이런 (제보 내용이 사실인) 경우는 공익제보자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무시됐다. 육군 관계자는 “외부 비판 여론도 이해되지만, 익명의 제보나 투서를 하고도 그대로 두면 인사철마다 투서나 음해가 횡행할 수밖에 없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다른 군 관계자는 “무조건 징계를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놓고 이런저런 혐의를 가져다 붙인 것 아니겠느냐”며 “군 내부 비리가 끊이지 않는 데에는 ‘잘못을 한 사람도 나쁘지만 잘못을 알린 사람도 나쁘다’는 군 수뇌부의 태도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징계의뢰자인 승 장군과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명확한 범죄 혐의를 덮고 넘어간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인데, 징계의뢰 석달이 넘도록 징계위원회가 열릴 기미도 안 보이기 때문이다. 또 비리혐의 공무원은 조사나 재판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사표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한 대통령령에 어긋나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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