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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김정일은 누구인가

등록 2011-12-19 14:01수정 2011-12-19 15:31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사망했다. 향년 69.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낮 12시 정각 생방송으로 내보낸 긴급발표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2011년 12월17일 오전 8시30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서거하셨다”고 전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41년 2월 백두산 밀영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과 김정숙 사이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에선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김 위원장은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가족과 함께 소련에서 귀국한 뒤, 평양 남산소학교를 졸업하고 만경대 혁명자유자녀학원에 편입했다가 한국전쟁 당시인 1950∼52년 중국 지린학원에서 유학했다. 1960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1964년 졸업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61년 20살의 나이로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그는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등에서 지도자 수업을 닦았다. 문학과 영화, 공연예술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였다.

33살때인 1974년 노동당 정치위원회 위원에 오르면서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확정됐다. 1970년대 내내 경제성장 운동인 천리마 운동과 3대혁명소조운동을 직접 조직하고 이끌면서 지도력을 발휘했다. 잠재적 후계 경쟁자인 숙부 김영주와 이복동생 김평일 등 정적들을 숙청하면서 권력기반도 다졌다. 이 시기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적 완성도 공식적으론 그의 성과로 선전된다.

김정일 연표
김정일 연표

이를 바탕으로, 1980년(39살)에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면서 북한 권력의 양대축인 정치와 군사 부문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1983년 중국의 후야오방 당시 공산당 총서기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은 명실상부한 북한의 후계 최고지도자로 인정을 받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1991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된 데 이어, 이듬해 4월 군 원수 칭호를 부여받았다. 1993년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됐다.


1990년대 초 김 위원장이 군사 부문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사회주의의 몰락 및 냉전체제의 와해와 관련이 깊다. 1989년 중국 티엔안먼 사태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시작으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미노 붕괴가 이어졌고, 1991년에는 옛소련도 해체됐다. 1992년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북한의 고립과 위기감은 극도에 이르렀다.

1993~94년 1차 핵위기와 제네바 합의를 통한 일시적 타개, 1994년 7월 김일성 전 주석의 사망, 극심한 가뭄과 흉년으로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고난의 행군 등 북한으로선 체제와 생존을 위협하는 대형 사건들이 숨돌릴 틈도 없이 이어졌다. 군을 앞세워 외세의 침략과 봉쇄 음모로부터 인민의 자주성을 보위한다는 선군정치가 본격화한 것도 이 즈음이다. 2000년에는 북한 최고지도자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국제사회의 압박 국면에서 전통적인 조-중 동맹을 다졌다.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은 우리나라가 해방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55년만에 남북 정상이 만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두 정상은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한때나마 해빙 분위기를 타고 남북간 교류와 경제협력이 활발해지기도 했다.

김위원장은 2008년 8월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지면서 급속히 건강위기설이 퍼졌다. 왼쪽 팔 등 신체 한쪽이 불편해보이는 모습이 찍힌 사진들도 대거 나돌았다. 이후 김정일은 삼남 김정은(28)에게 3대 세습으로 권력을 넘겨주는 후계 구도를 서둘렀다. 김정은은 2010년 9월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중앙위원회 위원에 오르면서 북한 인민군 대장 칭호까지 한꺼번에 부여받았다.

김위원장은 그러나 2009년 4월 국방위원장이 재추대되고, 올해엔 러시아 극동지역와 중국도 깜짝 방문하는 등 활발한 현지지도와 대외활동을 재개하면서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 후계구도 안착을 위한 노력에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깊어진 병세와 누적된 피로를 이기지 못한 채 2011년이 다 가기 직전에 끝내 숨을 거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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