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경찰이 버스로 마을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자 한 주민이 버스 아래로 지나가겠다며 비좁은 틈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서귀포/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주 해군기지 추진과정 문제점
2007년 마을회의서 의결뒤 주민 절반이상 반대운동
제주도·정부 현실성 없는 ‘민군복합항’으로 계획 변경
“갑자기 공사강행은 안보프레임 이용한 선거전략 의심”
2007년 마을회의서 의결뒤 주민 절반이상 반대운동
제주도·정부 현실성 없는 ‘민군복합항’으로 계획 변경
“갑자기 공사강행은 안보프레임 이용한 선거전략 의심”
제주도의 공사 일시보류 요청을 거부한 정부가 7~8일 ‘구럼비 바위’ 폭파 작업을 강행하면서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군과 일부 주민 및 운동가들 사이 갈등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가세하면서 전선도 확대됐다. 제주 해군기지 추진 과정에 무슨 문제점이 있기에 이런 파국을 맞아야 하는 것일까?
■ 제주 해군기지 추진 과정 제주 해군기지 계획은 20년 전인 1992년 해군과 합동참모본부가 그 필요성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하지만 군내 전력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10년 넘게 서랍 안에서 잠잤다. 2000년대 초중반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항과 남원읍 위미항이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주민 반발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 4월 강정마을에서 마을회의를 거쳐 제주도에 유치를 건의하면서 해군기지 계획은 새 국면을 맞았다. 제주도는 주민 의견수렴과 여론조사 등을 거쳐 그해 5월 강정마을을 후보지로 건의했고, 정부는 그해 6월 이를 확정했다.
하지만 강정마을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주민 대다수가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을회의에서 유치를 의결했다지만, 1000여명에 이르는 주민 유권자 가운데 당시 회의 참석자는 87명에 불과했다.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몇달 뒤에 열린 마을회의에는 800여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참석해 유치 반대를 의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찬성 쪽 주민들과 정부는 마을회의 평상시 참석자가 50~60명 수준이고, 향약 규약에 따라 51명 이상만 참석하면 총회가 성립한다며 후보지 선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 현실성 부족한 제안 수용해 논란 자초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는 사실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국책사업을 정색하고 반대하기도, 주민들 반대 의견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제주도와 도의회에서 크루즈선도 출입하는 민군 복합항으로 가자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그해 연말 이명박 대통령 등 대선 후보들이 이를 수용했다. 2008년 9월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기항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 계획을 확정했다. 이듬해 4월에는 국방부와 국토해양부, 제주도가 이에 관한 기본협약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민군 복합항 계획은 결과적으로 문제를 더욱 키우는 화근이었다. 최근 벌어진 15만t 크루즈선 입항 시뮬레이션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이 이를 방증한다. 전세계 7척이 있다는 15만t급 크루즈선은 동아시아에 나타난 적이 거의 없다. 앞으로도 제주도에, 그것도 강정항을 2척이 동시에 찾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상류계층인 크루즈선 승객들을 끌 유인책이 없고,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정부가 실효성 없는 복안을 덥석 받아들인 게 결국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더니, 최근엔 ‘15만t급 크루즈선이 입항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 사회적 비용 눈덩이처럼 커져 권위주의 통치가 종식된 뒤 최근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는 화장장과 핵폐기장 등 공공재적 시설물 설치를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핵폐기장 건립과 관련해 군수가 주민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치안이 마비되기도 했던 2003년 ‘부안 사태’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이후에는 주민 동의를 받은 지자체에서 유치를 신청하도록 하고, 선정된 곳에는 그에 합당한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나름 발전해온 것이다.
하지만 제주 해군기지 추진 과정은 이런 ‘발전’을 무색하게 한다. 지난해 연말 15만t급 크루즈선의 안전한 입출항을 둘러싼 문제가 불거진 뒤 국무총리실에서 기술검증위를 설치하고도 더욱 거센 반발만 불러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군과 제주도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객관적 검증을 하겠다고 나섰다면, 기술검증위가 새롭게 용역을 발주하거나 자체 조사에 나서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기술검증위는 지난달 29일 애초 해군이 발주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설령 같은 결론이 나오더라도 반대쪽이 동의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도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했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에서는 현재와 차이가 크다. 노 전 대통령은 기지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제주 현지에서 종교 지도자 등을 만나 직접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군사외교지 <디펜스21+> 김종대 편집장은 “지금까지 해군에만 사업 추진을 맡겨놓고 설득에 무관심했던 정부가 지금 갑자기 전면에 나서 공사를 강행하도록 하는 게, 안보프레임을 이용한 선거 전략의 일환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제주/허호준 기자 hyu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 ‘외부세력’ 살펴보니…
■ 근저당비 승소땐 1억 대출자 45만원 받는다
■ “한명숙대표 비례대표 출마 말라” 정면공격
■ “기도로 어려움 헤쳐나가야…”성경책 든 ‘장로 대통령’
■ “한국, 연평도 포격뒤 보복 검토”
■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 ‘외부세력’ 살펴보니…
■ 근저당비 승소땐 1억 대출자 45만원 받는다
■ “한명숙대표 비례대표 출마 말라” 정면공격
■ “기도로 어려움 헤쳐나가야…”성경책 든 ‘장로 대통령’
■ “한국, 연평도 포격뒤 보복 검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