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최근 군과 안보에 관한 이슈가 잇따라 부각되면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왜 하필 선거를 앞두고 장관들의 대북 강성 발언이 춤을 추고, 수년간 끌어오던 해군기지 공사 현장에서는 발파작업이 강행될까? 그다음 이어지는 질문. 군이 왜 ‘싸움’의 당사자가 돼 시민들과 드잡이를 하지?
“제주 해군기지에서는 해군 장병이 반대파 주민들의 주먹질이나 욕설이 무서워 가까운 길도 에둘러 다닙니다. 저희도 힘듭니다.” 한 해군 장교의 말이다. 외적을 막아야 하는 군이 왜 보호 대상인 국민과 대립해야 하는 것일까. 해군이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공군기지를 새로 만들려면 공군이 직접 나서서 주민들과 충돌하고, 싸우고, 이겨서 얻어내야 하나?
군은 기지가 필요하다면 소요만 제기하면 된다. 행정부와 정치권이 이를 받아 조정과 타협을 거쳐 결정을 내리고, 군은 이 과정에 그 필요성만 잘 설명하면 족하다. 그런데 제주 해군기지 추진은 오롯이 해군의 몫이다. 그 결과 해군은 시민들과 극렬하게 싸우는 중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군은 자발적으로 정치적·이념적 이슈에 뛰어들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보수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공인도 유명인도 아닌 한 젊은이의 ‘해적기지’ 발언을 뒤늦게 끄집어내 이를 크게 부각시켰다. 이에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당사자를 고소했다. 선거판 이념 공세의 장에서 군이 보수 쪽에 적극 가담해 힘을 보태고 있는 모양새다. 보수진영에서야 이를 어여삐 여기겠지만, 반대쪽에서 군은 희롱거리가 됐다. 누리꾼들과 소설가 공지영씨가 “나도 고소하라”며 ‘해적기지’ 표현을 반복 재생산하지 않는가.
군에서는 ‘안보에는 여야와 진보·보수가 따로 없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요즘은 군이 여야와 진보·보수를 가리고 있는 것 같다. 비단 해군만의 얘기도 아니다. 육군 몇몇 부대에서 여당에 비판적인 ‘나꼼수’ 등을 금지하자 김관진 장관이 이를 “적절한 조처”라며 감싸지 않았나.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군의 정치개입을 걱정해야 하는 시절이 된 듯하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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