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언급에 주변국 곤혹스럽거나 부담스럽거나
6자 회담이 열린 팡페이위안 회의장의 한-일 관계는 한여름 무더위가 무색하게 냉랭하다. 일본이 막무가내식으로 납치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한국이 단단히 화가 났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일본쪽에 6자 회담 전체회의의 공식석상에서는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일본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국장은 26일 회담 개막식에서 이를 무시했다. 그는 “일-북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사일·납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인 25일에도 일본은 한-일 접촉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납치 문제를 제기하는 데 한국 정부가 이해를 표했다”고 밝혀, 우리 정부를 격앙시켰다. 정부 당국자는 논평을 자처해 “일본 주장은 우리의 기본 입장을 반영한 게 전혀 아니다”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외교통상부도 밤 늦게까지 계속된 대표단과의 전화 협의를 통해, 일본 주장의 사실 여부를 거듭 확인하고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는 일본 대표단을 향한 의전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는 지난 25일 한국 대표단 숙소에서 한-미 접촉을 마친 뒤,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를 정중히 배웅했다. 그러나 같은 곳에서 있은 한-일 양자 접촉 뒤 사사에 국장이 떠날 때에는 대표단원 1명만 나갔다고 한다.
북한도 일본에 대한 ‘무시’ 전략을 계속하고 있다. 26일 개막식에서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사사에 국장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힐 차관보가 말할 때 그를 이따금씩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것과 대조적이었다. 북한과 일본 대표단이 ‘접촉’한 것은 25일 환영 만찬에서 인사를 나눈 게 전부다.
다른 참가국들도 일본의 태도에 반대하거나 비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일본이 마냥 ‘왕따’ 당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다 써도 모자랄 판이어서, 일본을 내치는 게 능사는 아닌 것이다. ‘수위 조절’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이 25일 환영 만찬에서 우리 쪽에 ‘국내 사정상 납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곤혹스러움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국내 여론과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혀 있는 일본 외교의 수준이 안타까울 뿐이라는 얘기도 대표단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베이징/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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