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진영의 통일 정책 전문가 5명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사회통합을 위한 새로운 통일·외교·안보 정책 방향’ 토론회에서 열띤 논의를 벌였다. 왼쪽부터 강태호 <한겨레> 기자,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통일부 전 장관), 문정인 연세대 교수(전 동북아시대위원장),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윤영관 서울대 교수(외교통상부 전 장관), 김태우 통일연구원장.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회통합을 위한 통일정책’ 토론회
사회통합위·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 주최
사회통합위·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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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햇볕정책때 북 군비 증강…핵논란 땐 지원 안돼”
문정인 “미국, 북과 평화조약 체결해 핵포기 압박해야”
윤영관 “비핵화 올인한 채 다른문제 무시하면 희망없어”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은 이른바 ‘극단의 정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문제일 것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보수-진보의 시각차가 크고, 이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시도도 많기 때문이다. 지난 5월18일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송석구)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가 공동으로 ‘사회통합을 위한 새로운 통일정책의 방향’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남북관계·통일 문제에 대한 극단적 시각차를 극복하고 보수-진보가 공유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찾아보자는 의도였다. 진보와 보수 쪽 참석자들 모두 흡수통일보다는 점진적 합의통일에 공감했으며, 국가보안법은 문제가 있는 조항부터 먼저 개정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북핵은 ‘뜨거운 감자’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북핵과 남북 경제협력을 ‘조건부로 연계할 것인가’와 ‘각각 병행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같았지만, 대처 방법을 놓고는 평행선을 달렸다. 진보 쪽 토론자들은 병행을, 보수 쪽 토론자들은 연계를 주장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은 “2009년 5월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해 6월12일 북한에 포괄적 금융·무역 제재 등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결의안은 현실적으로 무력화됐다”고 진단했다. 이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북핵과 남북경협을 연계한 목적은 북한의 버릇을 고치고 응징해 경제적 고통을 주기 위해서였지만 안보리 결의안 채택 이후 북한과 중국 간의 교역량은 큰 폭으로 증가함에 따라 북한은 전혀 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반면 실익 측면에서 남한은 북한과의 경협이 안 되면서 이익창출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김태우 통일연구원장이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김 원장은 “(내가) 20년 동안 일관되게 주장한 원칙은 투명성을 담보하지 않는 한 핵과 경협 병행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지난 10년 동안 북한에 많은 지원이 있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핵을 만들어 왔다”며 “햇볕정책 동안 북한은 받을 건 받으면서도 특수부대와 방사포, 탱크를 늘리는 등 군사력은 군사력대로 키웠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북한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북핵과 경협은 당연히 연계해야 하며, 북핵이 논란이 되는 한 대북지원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북한 주민이 정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북한 당국이 핵을 못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책임론도 나왔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전 동북아시대위원장)는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적대적 태도 포기와 수교”라며 “돈도 들지 않는 요구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문 교수는 “북핵을 포기하기 위해선 미국이 북과 수교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며 “만약 그런데도 북한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단교의 위협을 통해 북한을 제압할 수 있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그는 “북한은 6자회담이 선순환할 때는 약속을 지켰고 6자회담이 잘 안될 때는 약속을 파기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미국이 워싱턴 관료정치에서 벗어나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핵과 경협을 단순히 연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남북한의 정치·경제·외교문제를 병행하는 ‘멀티트랙 방식’도 제시됐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는 “비핵화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핵문제 하나에 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며 “비핵화에 모든 것을 올인한 채 다른 문제를 무시하면 남북관계는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북한이 시장원리로 경협을 원한다면 함께 논의하고,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차원의 보상과 연계해 제안할 필요가 있다”며 “대북정책을 입체적으로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진보·보수 “점진적 통일” 한목소리 냈지만… 통일 방식 ‘흡수통일’과 ‘점진적 합의통일’이라는 통일 방식을 놓고는 진보와 보수 쪽 토론자 모두 점진적 통합에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한목소리 안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나왔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흡수통일은 북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민주정부가 들어서도 주권이전을 안 할 것으로 보여 실현 가능성은 없고, 적화통일을 하기엔 북한의 역량이 낮고 남쪽 사회가 워낙 강하며, 무력통일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며 “가능성과 바람직한 측면에서 점진적 합의통일 방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독일 통일도 외형적으로는 흡수통일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서독의 끊임없는 관계 개선 노력과 동독의 자발적인 합의라는 측면에서 합의통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한편에선 흡수통일한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공식 정책으로는 점진적 통일 방안을 얘기해와 국민에게 혼선을 불러일으켰다”고 꼬집었다. 문정인 “정부, 흡수·점진 혼선”
김태우 “흡수통일, 금기 아니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급진적 흡수통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데, 통일 과정에서 군사적 충돌 위험성도 있고 경제적 비용에서도 큰 부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윤 교수는 “예상치 못한 사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흡수통일을 대비할 필요는 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우 통일연구원장은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구하는 통일 방식은 점진적 합의통일이지만 흡수통일 논의 역시 금기는 아니다”며 “남한이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는 시점에 북한을 떠안을 수 있는데 이 경우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제대로 준비를 못하기 때문으로, 이를 북한한테도 잘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태호 <한겨레> 기자(전 한겨레평화연구소장)는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며 많은 비용을 들었던 독일식 통일 방식은 잘못됐다”며 “현실적인 모델로 봤을 때는 중국-대만 모델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보안법 독소조항 개정부터” 의견 모아 국가보안법 개정·폐지 논의 ‘단기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조항을 삭제하고, 장기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와 연계해 폐지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개정·폐지 문제에 대한 이날 토론의 합의된 결론이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보수 쪽을 대표한 김태우 통일연구원장이었다. 김 원장은 “북한이 최근까지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일으키는 상황에서는 국가보안법의 체계는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면서도 “오남용 소지가 있는 고무·찬양, 불고지 등 조항은 개정 논의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북한이 동족으로서 대화의 상대이면서 동시에 군사적 주적으로서의 두 얼굴을 가졌다는 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무·찬양·불고지 등 폐지
김태우·문정인 등 대체로 공감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이에 호응했다. 문 교수는 “아직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에 적화통일 내용이 있고, 북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은 상대가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나중에 노동당 규약과 국가보안법을 함께 폐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다만 고무·찬양, 불고지 등 문제가 큰 조항은 먼저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했던 윤영관 서울대 교수도 “북한이 한국 사회의 안정을 해치려는 의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남한의 사회 안정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며 “먼저 잠입·탈출, 회합·통신, 불고지 등 문제가 되는 조항을 고치고, 남북한 사이에 신뢰가 쌓이면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본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는 “진보 쪽 분들이 보안법 유지를 이야기해서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한의 생산력과 군사비 지출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다. 김 원장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남한이 북한과 격차가 크다는 주장은 평상시 경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물류와 석유 수입 등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전쟁시에 남한은 위축되고, 북한은 거의 영향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북한이 비대칭 군사력인 핵을 갖고 있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물가를 고려한 국내총생산은 남한이 북한의 80~100배 정도, 군사비도 지난 20년 동안 10배 이상”이라고 반박했다. 정부의 통계를 보면, 2010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은 남한이 북한의 42배, 군사비 지출은 32배였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김태우 “인권, 보편적 권리…북 개선 요구를”
문정인 “남북관계 악화, 북 인권에 도움 안돼” 북한인권 문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보수 쪽에서는 인권은 보편적 권리로, 어떤 조건에도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진보 쪽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을 남북관계를 고려해 다루지 않으면 실질적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태우 통일연구원장은 “인권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권리·자격을 말하는 것이며, 인류의 보편적 권리이자 절대적 가치”라며 “그 나라 상황에 비춰 다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고, 특히 남북은 같은 민족으로서 개선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인권에 대한 내재적 접근에 따르면, 코소보나 우간다 등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났을 때도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가 개입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북한 인권을 세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인권과 평화의 상관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정부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은 이것이 남북 기본합의서 1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반박할 것이고, 남북관계는 적대적으로 간다”고 말했다. 둘째는 정치적 인권과 생존적 인권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로 인해 북한 주민에 대한 의식주 지원과 같은 생존적 인권을 경시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개선은 근본적으로 안에서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문 교수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150차례 정도 개입했는데,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며 “남한 정부가 북한과 교류·협력하고 신뢰를 구축하겠다고 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인권 문제를 말하는 것은 남북관계는 물론 실질적 인권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윤영관 “조용한 실리적 접근 필요”
이종석 “북 개방이 가장 효과적”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인권이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북한의 인권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차별 없이 다뤄야 하는 문제라는 점이고, 둘째는 대북정책으로서 한반도 평화 안정과 함께 북한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윤 교수는 “조용하면서도 실리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포용정책을 통해 남북 접촉의 면을 넓히고 북한 내부와의 연계고리가 많아야 북한의 인권에 대한 남한의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인권 문제를 정치적 자유라는 문제로만 보지 말고,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가장 효과적인 북한 인권 개선 방안은 북한 사회가 개방되고 시장경제로 나와서 주민들의 삶이 향상되고 사회가 다원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호 <한겨레> 기자는 “인권 문제는 국내 정치에서 보수가 진보를 공격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며 “식량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중단한 이명박 정부가 북한 인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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