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8 15 민족대축전 남쪽준비위원회 상임대표(서울대 명예교수)
분단시대 및 분단체제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지평을 넓히는 데 연구활동을 바쳐온 두 원로 학자,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광복 60돌의 의미를 되짚는 좌담을 나눴다. 지난 7월29일 서울 종로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난 두 학자는 <한겨레> 한승동 기자의 사회로 두 시간여 동안 ‘분단 60돌’ 극복의 길을 전망했다.
“해방 때 추구한 단일형 민족국가 통일은 무리 남북 서로 인정…각자의 미덕 살리는 통일을”
“비정상적 한미관계…주변열강 ‘통일’ 달갑지 않아 치우침 없이 동아시아 사회 일원되는 미래 열어야”
사회=광복과 함께 제기된 1945년 8월의 ‘시대사적 과제’가 지난 60년 동안 어떻게 구현, 실현됐다고 보는가.
강만길=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는 국민주권주의를 이루는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도입했고, 중국도 신해혁명을 통해 중화민국을 수립해 공화주의의 기초를 형성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과정을 겪지 못한 채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됐다. 그래서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은 해방운동인 동시에 공화주의운동, 국민주권운동이었다. 1945년 8·15의 과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해방과 독립이고, 또다른 하나는 ‘어떤 독립’인가의 관점에서 국민주권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국민주권주의 국가 건설은 일단 달성된 셈이다. 그런데 분단이 되면서 이질적인 두 개의 국민주권국가가 만들어졌다. 이 상태가 60년간 지속됐다. 8·15와 함께 이뤄야할 민족사적 과제를 분단으로 인해 다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20세기를 넘겼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6·15 공동선언을 통해 통일된 민족국가, 통일된 국민주권국가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섰다. 지금 우리는 그런 전환점에 서있다.
‘반쪽 국가’ 민주주의 공화주의에 손상
백낙청=일제하의 민족사적 과제는 강 선생님 말씀대로 독립된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해방 직후 이를 절반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남쪽에서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북쪽에서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태로 건국이 이뤄졌다. 그러나 분단된 반쪽 국가들이어서 내용상으로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많은 손상을 입었다. 지금이라도 그 과제를 제대로 달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60년의 역사가 쌓인 오늘, 과제의 실질적 내용은 상당히 달라진 면도 있다. 통일된 민주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큰 원칙에는 변함없지만, 딱히 1945년 당시에 생각하던 단일형 국민국가가 돼야 하느냐는 점은 검토의 여지가 있다.
우선 내부적으로 보면, 남과 북이 전혀 다른 제도를 갖고 60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것을 무리하게 단일형 민족국가로 통일하려 하면 통일 자체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통일의 내용이 오히려 빈곤해질 수 있다. 연방제든 연합제든 지금 우리 몸에 맞는 옷을 지어 입고 그 다음에 또 어떤 옷이 가장 적당할지 그때 가서 판단할 일이다. 세계적으로는 기존 국민국가의 위상이 변하고 있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여러 형태의 새로운 통합기구가 생기고 있다. 국민국가 내부의 지방자치 수준도 예전과 달라졌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 비춰보더라도 1945년 8월에 설정했던 목표를 지금 그대로 추구할 필요는 없다.
강=해방공간 3년 동안 우리가 왜 통일된 민족국가를 만들지 못했는지를 돌아보면 그 문제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38선이 획정되고 소련군이 북쪽을, 미군이 남쪽을 점령했고, 민족 세력 내부도 좌·우익으로 갈라졌다. 그런 조건 속에서 가능한 통일민족국가의 형태를 생각해 보면, 먼저 우익이 한반도 전체를 다스리는 민족국가를 만들 경우, 소련군이 북쪽에서 물러나고 좌익이 이를 수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반면 좌익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는 민족국가를 만들 경우도 미군이 철수하고 우익이 이를 수용해야 하는데 이 역시 불가능했다.
이런 경우 말고 두 가지 가능성이 더 있을 수 있다. 우선 좌우 연립정부가 성립됐다면 통일된 민족국가 성립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극좌와 극우를 배제하는 중도좌파 및 중도우파의 중도파 정부가 통일된 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좌·우익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제대로 된 정당 하나 없고 국민들이 투표 한번 경험하지 못하는 등 근대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전혀 안된 상황에서 좌우 연립정부 또는 중도파 정부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 때로부터 60년 지났다. 지금 어떤 통일국가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시 한번 그때의 상황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좌와 우가 서로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상황이라야 통일국가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대를 적이 아니라 동족으로 인식해야 한다. 적으로 인식하면 전쟁할 수밖에 없다. 전쟁을 통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6·25를 통해 증명됐다. 사실은 그 결과로 평화통일 이론이 정착된 것이다.
사회=지난 60년 동안 ‘평가해줄 만한’ 진전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독재 타도한 남한…민족 긍지 지킨 북한
백=지난 60년을 통해 남북이 각기 이룩한 것을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 즉 각자의 미덕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새로운 틀을 짜자는 것이다. 우리 남쪽만 보더라도 민족의 잠재적 역량을 바탕으로 이룩한 경제건설도 있고, 민중이 피흘려가면서 독재를 타도하고 이만큼이라도 민주화를 이룩한 성과도 있다. 북한 역시 70년대까지만 해도 제3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건설을 이뤘다. 지금은 여러가지로 곤란한 상태지만, 북쪽을 가보면 민족적 긍지나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자세는 남쪽보다 철저하다. 물론 경제가 뒷받침 못하니까 식량문제부터 외부의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빠지긴 했지만, 지금도 북한사회가 갖고 있는 그나름의 미덕들을 살리는 통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분단체제 속에서도 그동안 이룩한 것이 많다는 정당한 긍지를 가져야 한다.
북한 안 변한다?…확 바뀐 개성에 가봐라
사회=보수적 관점에서 보자면, 북쪽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많다.
백=우리가 옛날부터 배운 반공교육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는 민족이고 뭐고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북쪽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느끼는 것은 오히려 북쪽이 더 철저한 민족주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듣지 못했다. 김일성 주석이 처음부터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사람인 이유도 있지만, 어쨌든 최근 북쪽 상황은 민족주의가 지나치면 지나쳤지, 민족을 무시하고 공산주의나 계급해방만을 주장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가 됐다.
남쪽에서는 최근에 민족담론 자체를 부정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민족을 절대화하는 것은 문제지만, 절대화를 배격한다면서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또다른 흑백논리에 빠지는 일이다. 민족을 상대화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비중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강=북쪽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북쪽은 왜 중국처럼 변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중국은 아무리 변해도 대만에 흡수될 염려가 없다. 반면 북은 하루아침에 너무 심하게 변할 경우, 체제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 자기 체제가 위협·흡수당하면서 변하겠다는 정권은 없다. 북쪽은 그런 속에서도 상당히 변하고 있다.
개성을 두어번 가봤는데, 정말 군사요지다. 개성을 개방하려 할 때 북쪽 군부의 반대가 상당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원래 개성이 남쪽 땅 아니냐, 도로 주는 셈치고 하자’며 그야말로 통 큰 결단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에 가보면 여긴 이제 통일이 다 됐다는 생각이 든다. 북쪽 주민 2천명이 남쪽 사람들과 같이 식사하고 일한다. 개성은 휴전선에 접한 곳이기 때문에 전쟁을 예상했다면 개방할 수 없는 곳이다. 지금 육로 관광길도 열리고 있다. 경의선이 올해 안에 연결될 것이다. 동해선은 이미 연결됐다. 휴전선은 과거처럼 군사대결선이 아니라 단순한 경계선으로 변하고 있다.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북한의 변화를 바라니까 안 변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체제유지의 조건 아래서 보자면, 북쪽은 참 많이 변하고 개방했다. 더구나 2002년 7·1 조치 이후엔 경제적 부분에서도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상당히 많이 변했다.
사회=최근 동아시아 정세가 100년 전과 비슷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백=지금 상황을 100년 전과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괜히 기분내는 발언 아닌가 싶다.(웃음) 현실에는 안 맞는 이야기다. 100년 전과 비교해, 우리 민족이 결정적으로 불리한 점 한가지는 분단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말고는 많은 면에서 월등히 유리한 여건이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경제적으로 막강하다 하지만 옛날처럼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하는 일은 생각도 못할 상황이다. 서양과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보더라도 미국이 중국을 라이벌로 생각할 정도로 바뀌었다. 남북한의 역량도 구한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우리 민족이 분열돼있다는 결정적 약점 하나만 슬기롭게 제거할 수 있다면, 19세기 말, 20세기 초와는 천양지차의 현실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당시 한반도 지역이 남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된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영세국외중립이었다. 그런데 이는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들어갈 때 가능하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 없이 초기자본주의국가의 발전이 불가능하고 이를 위한 식민지는 한반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조건으로 영·미가 일본을 도와주는 상황에선 한반도의 영세국외중립은 불가능했다.
지금이 100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하는데, 국제적 조건에서 차이가 상당하다. 약했던 중국이 매우 강해졌다. 러시아가 한때 어려웠으나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문제는 한미 관계다. 누가 보더라도 과거 60년간 한미관계는 정상적 국제관계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한반도가 통일되면 한반도 전체가 미국 세력권 속에 들어가는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중국이나 러시아가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도 지금 불안해 하고 있다. 한반도가 내부에서 스스로 통일을 이루려 하는데, 만약 중국·러시아와 가깝게 통일이 되면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완전히 고립된다. 그래서 미국에 기대면서 계속 우경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어떻게 남북이 공조해 통일할 것인지가 21세기의 과제다. 19세기 말처럼 영세국외중립이 한 방법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세계사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중립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21세기는 유럽연합·아세안 등 지역협력주의로 가고 있다. 영세중립국이 되면 동아시아 공동체에 가입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을 내다보면서 통일해야 한다. 가깝게 보면 중국과 일본, 그 배후에 있는 러시아, 미국 등의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동아시아 사회의 일원이 되는 미래를 열어야 한다. 이미 지역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아세안과 한·중·일 등 동북아 세 나라가 결합해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으면 이런 공동체의 성립 자체가 어렵다. 평화통일 문제를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문제와 결부시키면서 해결해야 한다.
사회=결국 미국과 미군의 문제를 짚어야 할 것 같다.
강=평화주의를 지향하는 21세기에 동아시아 스스로는 지역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지 물어야 한다. 스스로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성립은 불가능하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한·프랑스, 한·영국 관계처럼 정상적인 국제관계로 만들 때 21세기 동아시아에 평화가 올 수 있다는 동아시아인들의 자존심이 스스로 생겨나고 있다. 만일 동아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역외의 미군이 한반도에 와 있을 이유가 없다. 미군은 결국 철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지난 60년간 한미관계는 결코 정상적 관계가 아니었고, 지금도 대등한 동맹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60년의 역사를 보면, 정상화를 향한 점차적이고도 꾸준한 진전의 길이었음을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가령 미국의 압력에 못 이긴 이라크 파병은 예속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지만, 동시에 지금 미국이 세계적으로 제일 골머리를 앓는 나라 중에 하나가 남한이다. 옛날에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지금은 말을 안 듣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정상화의 과정이 완성에 이르는 것은 외국군이 역시 완전히 철수하고 한반도가 어떤 형태로든 다시 통합된 시점일 것이다. 한미간의 진정한 우호관계도 그때 성숙하리라 본다. 다만 미군철수가 이뤄지지 않으면 통일작업이 전혀 진행될 수 없다는 식으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1차적 목표는 미군의 철수보다는 미군이 북을 위협하지 않게 되는 상태로의 변화, 다시 말해 북미관계 개선과 북미 평화체제다. 미군의 전면적 철수는 민족자존의 궁극적 목표요 상징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사회=해방 60년이면 두 세대가 지나갔다. 역사 주체, 현실 주체의 구성이 상당히 바뀌었다.
백=강 선생님은 6·25를 겪은 세대가 다 물러나야 뭐가 될 거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웃음) 6·25를 겪은 기성세대가 퇴진하면서 북을 적으로밖에 생각 못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이로운 현상이지만, 젊은 세대가 전면에 나서면서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북을 적으로 보느냐 동포로 보느냐는 문제설정 자체에 대해 무관심한 세대가 자라고 있다. 그런 건 늙은이들이나 하는 이야기지 동포니까 어쩌란 말이냐는 식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분단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분단에 길들여진 탓인데, 싹수없는 애들이라고 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배세대의 교조주의나 지나친 민족주의에 대한 건강한 반발의 측면도 있고, 어쨌든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로 많은 문제가 분단과 관련돼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사는 현상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사회과학계도 그렇다. 진보적인 학자라는 이들이 남한사회를 분석하면서 분단체제와 연결시켜 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교과서에서 배운 선진사회를 기준으로 이런저런 비판을 ‘신랄하게’ 제기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를 향해 동포애를 설교한다거나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남북교류의 장을 넓혀서 젊은이들이 동포애를 실제로 느껴볼 기회를 주면서 분단현실을 실감하게 해주고, 우리 남쪽의 내부 문제라고만 생각하는 문제, 젊은이들 자신의 일상적인 문제가 어떻게 분단체제와 맞물려 있는지를 그야말로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정당한 사회인식을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과거를 돌아보는 일을 두려워하는 세력이 여전하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역할도 그런 점에서 살펴볼 수 있을 듯한데.
강=과거 60년간 못했던 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해방정국에서 한번 실패했다. 이승만 정권은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4·19는 ‘혁명’이 됐어야 했다. 4·19 주도세력이 정권을 쥐었다면 과거사를 청산했을 것이다. 4·19 이후 야당이 정권을 잡았는데 그 대부분이 일제 관료출신이다. 5·16 쿠데타 이후의 군사정권은 일제 직업군인 출신이다. 이 두 세력은 비록 세대는 다르지만 생각은 같은 사람들이다. 당연히 과거사 청산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 다음 김영삼 정부는 군사정권과 타협해 들어선 정권이다. 도저히 과거사 청산을 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권도 옛 군사정권 세력과 연합해 들어섰다. 옛 군사정권 세력은 상당 기간 동안 정부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노무현 정권은 과거 기득권 세력과의 관계를 끊고 성립된 정권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해방 이후 처음이다. 훗날 역사가들이 그렇게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친일세력이 다 사망했는데 무슨 청산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청산해야 한다. 그게 없었기 때문에 식민지근대화니 일제지배가 다행이니 하는 이야기 나오는 거다. 철저하게 학문적으로, 어떤 사람이 무슨 방법과 목적으로 반민족행위를 했는지 철저히 밝힐 생각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송병준이나 이완용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 경험 부족, 청렴함으로 메꿔야
사회=현 정권에 대한 실망과 탄식의 목소리들도 있다. 한편으론 그런 좌절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고.
강=현 정부에는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다. 이들은 이전에 행정이나 정치에 관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를 메워나가고 국민 지지를 받으려면 원래 갖고 있었던 정의감, 청렴함으로 일관해야 한다. 경험이 부족한 그들을 지지한 것은 국민의 요구이자 바람이었는데, 정권을 잡은 뒤 옛 정권처럼 가버리면 앞으로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악영향을 준다. 결국 경험 부족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청렴도와 정의감이다. 그런 것을 지켰으면 좋겠다. 설령 정권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자리에서 물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양심, 정의감, 청렴함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처음 민주화운동, 시민운동에 참가할 때의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
백=강 선생께서 정부에 대해 고언을 하셨으니 나는 동료 시민들을 향해 한마디 하겠다. 자기가 지지해 뽑아놓은 정부라 해도 잘못할 때는 매섭게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듣는 쪽에서 아프게 느낄, 정곡을 찌른 비판이 돼야 한다. 아직도 분단체제의 질곡에 얽매어 있는 한국사회의 성격과 한계를 이해하고 이 사회를 대표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못하는 일을 정확히 짚어가며 비판해야 한다. 특히 지식인의 경우, 식민지시대나 독재시대에는 국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이 양심적 지식인의 기본자세였는데, 그러다보니까 국정경험이나 실물에 대한 지식은 없이 원론적 비판을 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분처럼 돼버렸다. 실제로 지금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지식인으로서 남는 장사다. 잡아가는 사람도 없고.(웃음) 물론 지식인은 항상 원칙에 입각해서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서 ‘세정(細情)을 헤아리고’ 폐부를 찌르는 비판을 하자는 것이다.
정리/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
남북관계 60년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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