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②
김관진-김장수 등 안보라인의 말폭탄에 놀란 가슴
A4 1장에 그려진 님의 고심을 보고 진정이 되었습니다
일단 큰 시름은 놓았습니다. 북한은 도발적 언사와 행동을 자제하고, 미국은 북을 자극할 군사 활동을 접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차는 격납고로 들어갔고, 미국의 대륙간탄도탄 훈련은 취소됐습니다. 여기에 님은 ‘용기있게’ 대북 대화 제의를 했고, 미국은 중국의 지원을 압박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망 축소 등을 제시했습니다. 지금쯤 망원 렌즈로 이런 변화를 살필 것 같은 북 지도자 김정은의 호기심 많은 눈동자를 상상해봅니다.
주 중반까지만 해도 착잡했습니다. 해외의 이른바 전쟁전문기자들이 속속 입국했습니다. 280여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쟁 취재에 이골이 난 사람들입니다. 불구경이라도 하듯 몰려온 그들이 몹시 언짢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들의 눈에 한반도는 불길에 에워싸인 화약고로 보이니. 그때 마침 작은 희망의 조짐 하나가 불현듯 나타났습니다.
지난 10일 몇몇 일간지에는 청와대 국무회의 때 대통령의 모두발언 자료가 사진기사로 보도됐습니다. 개성공단 관련 내용이 A4용지 1장에 10줄 정도가 담겨 있었는데, 10줄 중 성한 내용은 단 두 줄뿐이었습니다. 나머지에는 글 중간에 긴 가로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두 줄이 그어진 것도 있고, 그 위에 나선을 덧씌운 것도 있었습니다. 지워진 문장 사이엔 직접 쓴 댓 줄의 메모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거기에도 가필의 흔적이 있었고요.
놀랐습니다. 저렇게도 신중했던가? 발언자는 낱말 하나, 문장 하나를 선택하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음이 역력했습니다. 그런 고뇌 때문인지 그날 발언은 험악한 상황에서 앞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님에 대해 처음 안도감을 갖게 된 것은 그때였습니다. 그동안은 정치권 호사가들 말처럼 ‘저러다 1년이나 갈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님의 이런 고민을 알고 있기나 한 것인지… 참모들은 여전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비서실장은 사진 취재와 보도 문제로 한바탕 난리를 폈다고 하더군요. 홍보수석과 춘추관장이 된통 당하고. 사실 그 사진은 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의 고뇌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입장에선 최고의 홍보물이었죠. 그런데 비서실에선, 혹시 님의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될까 전전긍긍했던 거죠.
국가 지도자의 한마디는 국가의 명운과 직결되기도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했습니다. 이 발언은 2년 뒤 외환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 파국적 힘을 발휘했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지원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쉽게 합의한 것이 바로 상호비방 금지였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약속만은 꼭 지켰어야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대북전단 대량 살포 등 북에 대한 비방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른바 국가의 존엄을 모독당했다는 북이 가만있을 리 없었죠.
이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극단적인 대치에는 몇몇 군 출신의 경솔한 말폭탄도 적잖이 기여했습니다. 특히 김관진 국방장관의 설화는 심각했습니다. 그는 북이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을 발표하자, 다짜고짜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거론했습니다. 일부 ‘호전적’ 매체들은 아파치 헬기, 특수전 헬기, 공군 전투기 그리고 특수부대를 동원한 인질 구출작전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죠. 사실 북은 남쪽 사람을 잡아두기는커녕 떠나라고 재촉했습니다. 눌러 있겠다고 고집 피운 건 우리 쪽 사람들이었습니다. 김 장관 발언은 지금도 북이 개성공단 폐쇄 책임을 남쪽에 넘기는 핑계로 이용됩니다. 이런 자폭성 언사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든 버릇입니다. 2010년 그는 “북에 도발의 대가가 얼마나 처절한지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도발하면 묻지도 말고 쏘라. 선조치, 후보고하라. 공격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휘관은 상황 발생시 매뉴얼에 따라 엄격하게 대응하면 됩니다. 말은 정치인의 몫이지, 행동하는 군의 몫이 아닙니다. 지휘관의 공연한 말은 엉뚱한 오해만 불러일으킬 뿐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도 비슷합니다. 그는 손자병법 행군편에 나오는 ‘무약이청화자모야’(無約而請和者謀也·이유 없이 화해를 청하는 데에는 계략이 있다)는 구절을 인용해, “급하거나 위기라고 해서 섣부른 대화를 시도하지 않겠다. 대화의 계기는 북한이 만들어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대화를 청하지도 않았는데 계략 운운했으니, 북이 가만있을 리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발언은 낱말 하나 선택에도 신중하며, 대화의 계기를 찾으려던 대통령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은 닷새 뒤 북한에 대화 제의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손자병법의 기초도 모르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북한이 10일을 전후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그의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 재미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입은 재앙의 문이고, 혀는 재앙의 뿌리(口是禍門 舌是禍根)입니다. ‘無約而(무약이)…’ 문장의 도입부는 이렇습니다. “말은 겸손하면서 대비를 굳게 하는 자는 진격할 뜻이 있다. 말이 강경하면서 진격할 기세를 보이는 자는 퇴각할 뜻이 있다.”(辭卑而益備者進也 辭强而進驅者退也) 짖지 않는 개가 물고, 겁먹은 개가 짖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꼭 기억시켜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짖는 개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뭅니다. 어르고 달래는 게 최선입니다. 지금처럼 말의 엄격성과 신중성이 요구되는 때는 없습니다. 님의 누더기 말씀자료 사진을 책상 한켠에 두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우고 또 지우고, 첨삭하고 가필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그런 자세를, 특히 안보 관련 공직자들은 따라야 할 겁니다. chankb@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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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청와대 세종실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장관들이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2013.04.09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관진-김장수 등 안보라인의 말폭탄에 놀란 가슴
A4 1장에 그려진 님의 고심을 보고 진정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장관들이 참석한 국무회의가 9일 오전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렸다. 회의에 앞서 장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장수 안보실장,김관진 국방장관. 2013.04.09.청와대사진기자단
이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극단적인 대치에는 몇몇 군 출신의 경솔한 말폭탄도 적잖이 기여했습니다. 특히 김관진 국방장관의 설화는 심각했습니다. 그는 북이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을 발표하자, 다짜고짜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거론했습니다. 일부 ‘호전적’ 매체들은 아파치 헬기, 특수전 헬기, 공군 전투기 그리고 특수부대를 동원한 인질 구출작전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죠. 사실 북은 남쪽 사람을 잡아두기는커녕 떠나라고 재촉했습니다. 눌러 있겠다고 고집 피운 건 우리 쪽 사람들이었습니다. 김 장관 발언은 지금도 북이 개성공단 폐쇄 책임을 남쪽에 넘기는 핑계로 이용됩니다. 이런 자폭성 언사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든 버릇입니다. 2010년 그는 “북에 도발의 대가가 얼마나 처절한지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도발하면 묻지도 말고 쏘라. 선조치, 후보고하라. 공격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휘관은 상황 발생시 매뉴얼에 따라 엄격하게 대응하면 됩니다. 말은 정치인의 몫이지, 행동하는 군의 몫이 아닙니다. 지휘관의 공연한 말은 엉뚱한 오해만 불러일으킬 뿐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도 비슷합니다. 그는 손자병법 행군편에 나오는 ‘무약이청화자모야’(無約而請和者謀也·이유 없이 화해를 청하는 데에는 계략이 있다)는 구절을 인용해, “급하거나 위기라고 해서 섣부른 대화를 시도하지 않겠다. 대화의 계기는 북한이 만들어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대화를 청하지도 않았는데 계략 운운했으니, 북이 가만있을 리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발언은 낱말 하나 선택에도 신중하며, 대화의 계기를 찾으려던 대통령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은 닷새 뒤 북한에 대화 제의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손자병법의 기초도 모르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북한이 10일을 전후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그의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 재미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입은 재앙의 문이고, 혀는 재앙의 뿌리(口是禍門 舌是禍根)입니다. ‘無約而(무약이)…’ 문장의 도입부는 이렇습니다. “말은 겸손하면서 대비를 굳게 하는 자는 진격할 뜻이 있다. 말이 강경하면서 진격할 기세를 보이는 자는 퇴각할 뜻이 있다.”(辭卑而益備者進也 辭强而進驅者退也) 짖지 않는 개가 물고, 겁먹은 개가 짖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꼭 기억시켜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짖는 개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뭅니다. 어르고 달래는 게 최선입니다. 지금처럼 말의 엄격성과 신중성이 요구되는 때는 없습니다. 님의 누더기 말씀자료 사진을 책상 한켠에 두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우고 또 지우고, 첨삭하고 가필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그런 자세를, 특히 안보 관련 공직자들은 따라야 할 겁니다. chankb@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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