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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통일대박론을 넘자

등록 2014-02-16 21:18수정 2014-02-17 15:09

“박근혜 정부는 행운아다.”

지난 14일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쪽이 ‘통큰 양보’를 한 직후 오랫동안 남북관계를 연구해온 한 기업연구소 연구위원이 한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응 여부에 따라 올해 남북관계가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쪽이 지난해 11월21일 지방급 경제개발구 13곳과 여러 곳의 중앙급 경제특구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뒤, 외국으로부터의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이 청신호다. 경제발전을 위해 남쪽과의 대화·협력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마침 박 대통령도 연초부터 ‘통일 대박’을 주장하면서 통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키워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통일대박론을 제대로 점검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거듭 언급하고 있지만, 그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드러난 부분도 모호한 내용이 적지 않은 탓이다. 따라서 대중적 관심은 높지만, 내용성은 약한 통일대박론을 점검함으로써 보수와 진보의 통일담론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는 지난 1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흡수통일론에 기대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대박론이 흡수통일론에 기초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이사장은 이어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인데, 통일대박론에는 그런 과정에 대한 부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통일대박론에서 북한의 목소리를 고려할 공간이 없어 보이는 것도 문제다. 이는 자칫 ‘대북 압박이 통했다’는 식의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럴 경우, 남북관계의 시계를 거꾸로 후퇴시킨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내려온 북쪽의 김기남 대남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당시 청와대와의 대화에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굽히고 들어온다’고 상황을 오판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는 이후 임기 말까지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북쪽의 주장이 우리와 크게 다르더라도 대화를 통해 서로 바꾸어 나가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에는 갈등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통일대박론이 경제적 번영 이외에 어떤 새로운 가치를 ‘통일 한반도’에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정길 평화재단 기획위원은 “한반도 통일은 단순히 ‘성장주의’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 등 새로운 가치를 구현함으로써 문명사적 전환을 이루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통일대박론이 갈수록 첨예해질 미-중 갈등 등 동북아 변수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점 등도 미흡한 부분으로 지적할 수 있다.

정현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통일대박론을 계기로 보수와 진보가 소통을 강화해 통일담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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