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정국장악 박차 두나라 셈법 맞아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양쪽은 베이징 6자 회담 기간 열린 양자접촉에서 정부 간 교섭 재개를 논의해 18일 합의를 도출했으며, 회담 타결을 지켜본 뒤 합의 사실을 발표했다.
이번 합의는 북-일 수교를 열망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총선 압승으로 정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틀어쥔 고이즈미 총리가 임기 만료를 1년 앞두고 대북 교섭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치권에선 고이즈미 총리가 우정민영화 법안 통과 뒤 북-일 수교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자리매김해 전력을 쏟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교섭 급진전을 위한 고이즈미 총리의 ‘3차 방북설’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또 6자 회담의 진전과 대조적으로 납치 문제의 교착상태가 지속되면 매우 난처한 처지에 빠질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위기감도 작용했다.
북한 또한 지금이 대화 재개의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제협력이 절실한 북한으로선 정권 기반을 공고히 한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 안에 수교 교섭을 매듭짓는 것이 최선이며, 적어도 교섭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자민당의 총리 후보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만큼 강한 의지를 가진 인사가 없을 뿐더러, 대북제재를 주장하는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와 같은 극우 인사가 뒤를 잇게 되면 최악의 사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6자 회담 때 일본과의 양자접촉에서 전례없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대화 재개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양쪽이 재개될 정부간 교섭을 수교를 향한 ‘준비단계’로 규정한 것은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해 서로 한발씩 양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이른바 ‘가짜 유골’ 논란으로 좌초된 실무자 협의를 계속하기를 기대하지만, 이는 납치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또 납치 문제를 건너뛰고 수교 교섭으로 직행하게 되면 납치피해자 가족과 극우 세력이 거세게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들은 벌써부터 납치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지 모른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두 나라 정부의 대화 의지는 확고해 보이지만 교섭 난항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대 걸림돌인 가짜 유골 논란의 처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다. 북한이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것이라며 보낸 유골에 대해 일본 정부가 가짜라고 단정짓고, 북쪽이 그 감정결과가 날조라고 반박하며 서로 비난공방을 펴온 터여서 양쪽 모두 물러서기 힘든 것이다. 무엇보다 양쪽의 대화를 끊임없이 저지해온 극우 세력의 책동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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