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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남북대화 의지’ 들고 와 남쪽에 ‘공’ 넘겼다

등록 2014-10-05 20:00수정 2014-10-06 08:15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맨 왼쪽)과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왼쪽 둘째)이 4일 저녁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열린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 실장, 황 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인천/공동취재사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맨 왼쪽)과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왼쪽 둘째)이 4일 저녁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열린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 실장, 황 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인천/공동취재사진
[뉴스분석] 북 실세 3인방 깜짝 방한
남북 고위급접촉 수용하며
박대통령 면담은 거절
‘당장 성과낼게 없다’ 판단한듯
관계개선 기대와 한계 동시에
북한 이미지 개선 효과도
북한 핵심 실세들의 4일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인천 방문은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표단은 박근혜 대통령 예방에는 선을 긋는 등 ‘속도조절’을 하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남북관계 청신호가 켜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출발선에 섰을 뿐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쪽 최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명분은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여지만, 그 전격적인 추진 과정이나 방문자들의 면면은 파격적이다.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북쪽 최고위급 대표단의 방한은 3일 오전 인천아시안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북쪽 관계자를 통해 방한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면서 하루 만에 이뤄진 ‘깜짝 방문’이었다. 또 면면을 보면 황병서 군총정치국장은 사실상 권력 2인자로 통하고, 최룡해 당 근로단체 담당비서는 얼마 전까지 군총정치국장으로 막 출범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에 핵심적 구실을 했다. 김양건 당 대남담당비서는 통일전선부장으로 남북문제를 총괄한다. 사실상 지금까지 남쪽을 방문한 최고위층 북쪽 인사들인 셈이다.

이들의 체류기간은 4일 오전 인천공항 도착에서부터 오후 출국까지 12시간 남짓에 그치고 체류 장소도 인천에 국한됐다. 그러나 이들은 ‘핵심 실세’에 걸맞은 통 큰 행보를 보였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난 8월 우리 쪽의 제2차 남북고위급 접촉을 전격수용하고, 10월말~11월초 남쪽이 정하는 대로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비방전단 살포 중단 등을 요구하며 이른바 ‘전제조건’을 내걸었던 것과는 대비된다. 일부에선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군복을 입고 남쪽을 방문한 것은 군부도 남북관계 진전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역대 최고위급 대표단을 남쪽에 보낸 것 자체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남북관계 개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들이 청와대 예방을 완곡하게 거부한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들의 행동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 사절로 서울을 찾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부장이 당시 청와대 예방을 요청한 뒤 체류 일정까지 연장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했던 전례와도 비교되기 때문이다.

우선, 황병서 군총정치국장 일행이 청와대 예방에 뜻을 두지 않은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가져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쪽의 최고권력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한 제안을 가져왔으면 청와대를 예방해 직접 의사를 전달할 기회를 저버리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진전 의지를 과시하되, 남쪽의 분위기를 탐색하기 위한 제한적 행보인 셈이다.

실제 황 총정치국장 일행은 스스로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것이 아니며, 김정은 제1비서의 친서도 없다고 밝히는 등 스스로 방한 역할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북한은 그동안 남북대화를 위해선 남쪽이 1차 고위급접촉 때 합의한 ‘상호비방 중지’를 이행하고 대북봉쇄조치인 5·24조치에 대해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며 “황 군총정치국장 일행이 굳이 박 대통령을 만나 이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는데 굳이 박 대통령을 만날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또 “제2차 고위급접촉을 10월말~11월초로 느슨하게 합의한 것도 남북대화가 열려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동시에 향후 남북대화는 남쪽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점도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9년 김기남 당 비서 일행의 청와대 면담 결과에 대한 불쾌했던 기억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 비서 일행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 직접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친서를 전달했으나 오히려 의도했던 남북관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북한의 비세만 노출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이 ‘우리 정부가 원칙을 지켜 북한이 굴복하고 들어왔다’며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학습경험이 이들의 청와대 예방을 머뭇거리게 했을 수도 있다.

일부에선 황 총정치국장의 청와대 예방 거부를 북한의 대남 전략 변화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 당장 성과를 내는 단기적 접근보다는 전체적인 북한의 이미지 개선에 주력하는 전략적, 중기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북한이 유엔총회를 앞두고 인권보고서를 발간하고 인권대화를 할 수도 있다고 밝히는 등 과거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번에 청와대 예방 제의를 ‘쿨’하게 거절한 것도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좀더 멀리 내다보고 포석을 깔고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흥미를 끄는 대목은 청와대가 황 총정치국장 일행에 청와대 예방 의사를 타진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청와대를 예방할 의사가 있으면 준비할 용의가 있다고 북쪽에 말을 꺼냈지만 북쪽은 시간 관계상 어렵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런 제안에서 기존의 ‘원칙’과 ‘신뢰’를 앞세운 냉랭했던 태도와는 다른 온도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안보분야의 고위인사는 “황 총정치국장이 북한의 2인자이지만 특사도 아니고 공식방문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 성격의 방문인데 우리 쪽에서 안보분야 총책임자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만나 예우를 하고 ‘청와대 예방을 원하면 준비할 용의가 있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의외”라며 “최근 여권 내부에서 5·24조치 해제 목소리가 나오는데 청와대의 분위기도 대북 유화책 쪽으로 선회하는 것은 아닌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번 황 군총정치국장 일행의 방한 의도가 무엇이든 이번 방한으로 남북대화 가능성이 주목을 받고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적인 태도로 남북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5년 임기의 대통령제에서 3년차로 넘어가면 남북관계가 탄력을 받기 어렵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이라며 “박근혜 정부로서는 이번이 남북관계 개선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태도로 살려나가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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