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북한, 3년]
17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주기이자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집권 3년을 맞는 날이다. 김 제1비서는 지난 3년 동안 비교적 안정적인 후계체계를 확립해 온 것으로 보인다. 김 제1비서는 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당·정·군의 최고직위를 모두 승계했고,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등 권력위협 세력도 제거했다.
남북관계나 대외관계는 핵 문제와 지속된 적대관계 등으로 아직 큰 성과 없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경제적으로는 한국은행 통계로도 2011년 0.8%, 2012년 1.3%, 2013년 1.1% 등 3년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다.
김정은 체제 3년, 아버지 3주기 탈상을 앞둔 그는 그동안 어떻게 북한을 운영했으며, 어떤 성과를 거뒀고 어떤 한계를 보였는지 짚어본다.
김정일보다 김일성과 닮은 외모로
짧은 경륜·부족한 카리스마 보완
장성택 처형 등 권력층 효과적 통제
리설주 공개 등 개방적 모습도 보여 김정은 체제는 집권 3년을 거치면서 북한사회에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전격적인 처형 때도 북한 내부에서는 별다른 동요가 포착되지 않았다. 김정은 당 제1비서가 당·군·정 등 핵심 권력층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김 제1비서는 그동안 권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우선 북한정권 창시자인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닮은 외모와 행동으로 짧은 경륜과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완했다. 제도적으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선군정치로 형해화된 당을 정상화하고 군에 대한 당의 지배를 강화함으로써 유일영도 체제를 확립했다. 또 최룡해 당비서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측근인사 기용과 50~60대 전문성 있는 관료를 등용하는 세대교체를 통해 ‘김정은의 북한’을 구축해 가고 있다. ■ 할아버지와 닮은 듯 다른 리더십 김 제1비서는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를 통해 정치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보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선 통통한 얼굴에 비만 체형, 이마를 훤히 드러낸 짧은 헤어스타일 등 외모부터 김 주석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중 친화적이고 활달한 행동 거지도 은둔형에 가까운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와 엇비슷하다. 김일성 주석은 외국 지도자들을 만날 때 흔히 과감한 스킨십과 함박웃음에 인색하지 않았다. 김정은 제1비서도 군부대 현지지도 때 병사들과 팔장을 끼거나 함께 웃곤 했다. 이밖에 김 제1비서의 옷차림이나 제스처, 걸음걸이 등에서도 김 주석을 연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닮은 꼴에 대해선 정치적 해석이 많다. 김 주석의 후광에 기대 권력을 구축하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모나 행동거지를 넘어선 내용 면에선 아직 미숙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 체제는 2012년 2월 북-미간 미사일 발사 중지 등이 포함된 ‘2·19 합의’ 뒤 한달 반 만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믿을 수 없는 북한’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고착시켰고, 이듬해 4월 일방적인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재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자충수가 됐다. 김 제1비서가 지난달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을 주도한 미국을 “식인종”, “살인마”라는 원색적인 용어로 직접 비난한 것도 외교적 자살행위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1990년대 초 북핵 위기 때 김 주석은 외신기자를 불러 ‘미국가서 낚시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우호적인 대북 인식을 조성하는 수완을 발휘한 적이 있다”며 “김 제1비서는 경솔한 면도 있고 실수도 잦다. 콘텐츠에선 할아버지와 격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제1비서는 이전 세대와 달리 공개적이고 개방적인 리더십도 선보였다. 2012년 4월 장거리로켓 발사 실패 인정은 ‘수령 무오류론’의 북한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걷는 모습을 공개한 것이나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처형을 전격 공개한 것 등도 과거에 없던 일이다. 또 부인 리설주를 전격 공개하고 함께 팔짱끼고 다니는 모습이라든지, 2012년 7월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에서 미키 마우스가 등장하고 헐리우드 영화 <록키>의 주제곡이 연주된 것 등도 김 제1비서의 개방성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통일부는 최근 김정은 체제 3년을 평가하는 자료에서 “김 제1비서가 김 주석의 외모와 제스처 등을 모방해 선대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나름 자신만의 리더십도 구축해가고 있다”고 풀이했다. 군 수뇌부 강등 31건·복권 19건
어르고 달래는 인사로 군장악
‘당 우위’ 정상적 국가로 복귀
“세대교체·원로예우로 정국 안정화” ■ 정상적인 당 국가체제 복귀 김정은 체제는 제도적으로 노동당 기구의 정상화를 통해 구축됐다. 아버지가 ‘선군 정치’를 앞세워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북한을 이끌어갔다면, 김 제 1비서는 당의 공식 의사결정기구를 주로 활용했다. 이는 당 우위인 정상적인 ‘당 국가’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당의 복권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김 제1비서 집권 이후 당 대표자회가 한 차례 열렸으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2차례, 당 정치국 회의가 6차례,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가 3차례 열렸다. 김 위원장 시절엔 2010년 9월 아들의 후계자 공식화를 위해 당 대표자회가 열리기 전까지 거의 유명무실했던 조직들이다. 이들 당 기구는 정책결정 과정에서도 제구실을 했다. 2013년 3월 소집된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발전과 핵무력의 병진 노선’을 결정했다. 2011년 12월 정치국 회의에선 김 제1비서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가 결정됐다. 김 제1비서의 권력강화 과정에서 결정적인 고비였던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과 리용호 군총참모장의 숙청도 형식적으로는 당 정치국 회의 결정을 통해 공식화했다. 김 제1비서가 19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등 최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비상체제인 ‘군 우위 체제’를 이제 정상적인 ‘당 국가’ 체제로 돌려놓으려 시도한 것이다.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당의 제도적 통치 기능의 강화를 통해 김정은의 취약한 권력기반과 리더십을 보완하고 군에 대한 당의 영도를 확실히 보장함으로써 3대 세습체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김 제1비서는 또 군 수뇌부에 대해 강등과 복권을 거듭하는 독특한 인사 스타일로 군 장악력을 높였다. 김 제1비서 집권 이후 인민무력부장은 김정각에서 김격식으로, 다시 장정남에서 현영철로 4차례나 바뀌었으며, 주요 장성들의 강등 사례도 31건이나 되고, 다시 복권 조치를 한 경우도 19건이나 된다. 상대적으로 후계 연습기간이 짧았던 김 제1비서가 자신에게 적합한 ‘인물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군 총정치국장을 당 간부 출신의 측근으로 임명한 것도 과거와 비교되는 특징이다. 김 위원장 시절에는 과거 오진우, 조명록 등 군 출신 인사들이 총정치국장에 임명됐으나, 김정은 체제에서는 최룡해 당 비서와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민간인 출신이 차례로 맡았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김 제1비서가 지속적인 세대교체로 권력기반을 강화하면서도 원로세대는 나름 예우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짧은 경륜·부족한 카리스마 보완
장성택 처형 등 권력층 효과적 통제
리설주 공개 등 개방적 모습도 보여 김정은 체제는 집권 3년을 거치면서 북한사회에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전격적인 처형 때도 북한 내부에서는 별다른 동요가 포착되지 않았다. 김정은 당 제1비서가 당·군·정 등 핵심 권력층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김 제1비서는 그동안 권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우선 북한정권 창시자인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닮은 외모와 행동으로 짧은 경륜과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완했다. 제도적으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선군정치로 형해화된 당을 정상화하고 군에 대한 당의 지배를 강화함으로써 유일영도 체제를 확립했다. 또 최룡해 당비서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측근인사 기용과 50~60대 전문성 있는 관료를 등용하는 세대교체를 통해 ‘김정은의 북한’을 구축해 가고 있다. ■ 할아버지와 닮은 듯 다른 리더십 김 제1비서는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를 통해 정치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보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선 통통한 얼굴에 비만 체형, 이마를 훤히 드러낸 짧은 헤어스타일 등 외모부터 김 주석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중 친화적이고 활달한 행동 거지도 은둔형에 가까운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와 엇비슷하다. 김일성 주석은 외국 지도자들을 만날 때 흔히 과감한 스킨십과 함박웃음에 인색하지 않았다. 김정은 제1비서도 군부대 현지지도 때 병사들과 팔장을 끼거나 함께 웃곤 했다. 이밖에 김 제1비서의 옷차림이나 제스처, 걸음걸이 등에서도 김 주석을 연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닮은 꼴에 대해선 정치적 해석이 많다. 김 주석의 후광에 기대 권력을 구축하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모나 행동거지를 넘어선 내용 면에선 아직 미숙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 체제는 2012년 2월 북-미간 미사일 발사 중지 등이 포함된 ‘2·19 합의’ 뒤 한달 반 만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믿을 수 없는 북한’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고착시켰고, 이듬해 4월 일방적인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재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자충수가 됐다. 김 제1비서가 지난달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을 주도한 미국을 “식인종”, “살인마”라는 원색적인 용어로 직접 비난한 것도 외교적 자살행위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1990년대 초 북핵 위기 때 김 주석은 외신기자를 불러 ‘미국가서 낚시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우호적인 대북 인식을 조성하는 수완을 발휘한 적이 있다”며 “김 제1비서는 경솔한 면도 있고 실수도 잦다. 콘텐츠에선 할아버지와 격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제1비서는 이전 세대와 달리 공개적이고 개방적인 리더십도 선보였다. 2012년 4월 장거리로켓 발사 실패 인정은 ‘수령 무오류론’의 북한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걷는 모습을 공개한 것이나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처형을 전격 공개한 것 등도 과거에 없던 일이다. 또 부인 리설주를 전격 공개하고 함께 팔짱끼고 다니는 모습이라든지, 2012년 7월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에서 미키 마우스가 등장하고 헐리우드 영화 <록키>의 주제곡이 연주된 것 등도 김 제1비서의 개방성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통일부는 최근 김정은 체제 3년을 평가하는 자료에서 “김 제1비서가 김 주석의 외모와 제스처 등을 모방해 선대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나름 자신만의 리더십도 구축해가고 있다”고 풀이했다. 군 수뇌부 강등 31건·복권 19건
어르고 달래는 인사로 군장악
‘당 우위’ 정상적 국가로 복귀
“세대교체·원로예우로 정국 안정화” ■ 정상적인 당 국가체제 복귀 김정은 체제는 제도적으로 노동당 기구의 정상화를 통해 구축됐다. 아버지가 ‘선군 정치’를 앞세워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북한을 이끌어갔다면, 김 제 1비서는 당의 공식 의사결정기구를 주로 활용했다. 이는 당 우위인 정상적인 ‘당 국가’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당의 복권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김 제1비서 집권 이후 당 대표자회가 한 차례 열렸으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2차례, 당 정치국 회의가 6차례,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가 3차례 열렸다. 김 위원장 시절엔 2010년 9월 아들의 후계자 공식화를 위해 당 대표자회가 열리기 전까지 거의 유명무실했던 조직들이다. 이들 당 기구는 정책결정 과정에서도 제구실을 했다. 2013년 3월 소집된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발전과 핵무력의 병진 노선’을 결정했다. 2011년 12월 정치국 회의에선 김 제1비서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가 결정됐다. 김 제1비서의 권력강화 과정에서 결정적인 고비였던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과 리용호 군총참모장의 숙청도 형식적으로는 당 정치국 회의 결정을 통해 공식화했다. 김 제1비서가 19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등 최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비상체제인 ‘군 우위 체제’를 이제 정상적인 ‘당 국가’ 체제로 돌려놓으려 시도한 것이다.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당의 제도적 통치 기능의 강화를 통해 김정은의 취약한 권력기반과 리더십을 보완하고 군에 대한 당의 영도를 확실히 보장함으로써 3대 세습체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김 제1비서는 또 군 수뇌부에 대해 강등과 복권을 거듭하는 독특한 인사 스타일로 군 장악력을 높였다. 김 제1비서 집권 이후 인민무력부장은 김정각에서 김격식으로, 다시 장정남에서 현영철로 4차례나 바뀌었으며, 주요 장성들의 강등 사례도 31건이나 되고, 다시 복권 조치를 한 경우도 19건이나 된다. 상대적으로 후계 연습기간이 짧았던 김 제1비서가 자신에게 적합한 ‘인물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군 총정치국장을 당 간부 출신의 측근으로 임명한 것도 과거와 비교되는 특징이다. 김 위원장 시절에는 과거 오진우, 조명록 등 군 출신 인사들이 총정치국장에 임명됐으나, 김정은 체제에서는 최룡해 당 비서와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민간인 출신이 차례로 맡았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김 제1비서가 지속적인 세대교체로 권력기반을 강화하면서도 원로세대는 나름 예우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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