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TV‘ 아나운서가 2013년 5월23일 손에 든 태블릿PC를 이용해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우리민족끼리TV 화면 캡처
“지금 일부 사람들과 청소년들은 ‘동지’, ‘동무’라는 말은 회의나 공식적인 장소에서만 쓰고 여느 때는 ‘야’, ‘자’ 하면서 거친 말을 하거나 심지어 윗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반말을 하고 있다.”
북한의 계간지 <문화어학습> 최신호(2월27일 발행)에 실린 ‘언어생활에서의 문화성과 언어예절’이란 논문이 최근 북한 신세대 언어생활의 변화를 전했다고 <연합뉴스>가 5일 보도했습니다. 통신은 “북한 젊은이들이 남한 티브이 연속극 같은 자본주의 문화를 접하면서 ‘동지’와 ‘동무’라는 말을 촌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평양 출신 30대 탈북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기사에 인용된 내용만 봐서는 최근 ‘동지’나 ‘동무’의 사용이 얼마나 줄었는지, 어떤 단어로 대체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기 힘듭니다. 그보다 해당 논문은 ‘야’, ‘자’라는 호칭을 쓰거나 윗사람에게 반말을 쓰는 이들을 질책하면서, ‘동지’ ‘동무’를 쓰지 않는 잘못을 지적하고 우려를 전하려는 성격이 크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과연 ‘동지’와 ‘동무’는 어떤 식으로 쓰였던 표현이었을까요? 그걸 알 수 있다면, 왜 이런 질책과 우려가 나왔는지도 부분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바이 동무’는 왜 비문일까?
명사로서 ‘동지’와 ‘동무’는 모두 영어로 ‘comrade’로 번역되지만 북한에서 그 쓰임새는 차이가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높임말이냐 아니냐의 문제인데, 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에 나옵니다.
설명을 들으니 북한에는 ‘동무’ ‘동지’ ‘아바이’라는 호칭이 있다. 동무는 친구나 손아랫사람의 이름이나 관직에 붙이고, 동지는 윗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의 이름이나 직함에 붙이는 존칭이다. 과장 동무, 철수 동무는 낮춤이고, 과장 동지, 철수 동지는 존칭이다. 그리고 동지라고 부르기에는 나이가 많으면 아바이가 붙는다는 것이다.
나는… 무심결에 “예! 아바이 동무, 곧 갑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점잖은 안내단장이 깜짝 놀라며 내게 말했다.
“교수 선생, 아바이 동무라는 말은 없습니다. 아바이는 존칭이고 동무는 내림인데, 올렸다 내릴 수 있습니까? 남쪽에는 그런 말이 있습니까?”
입말(구어)에서 이름·직함 뒤에 ‘동무’, ‘동지’, ‘아바이’를 쓰는데, 불리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3가지 표현이 모두 남쪽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들이라 좀 낯설지만, 비교한다면 ‘~씨’라고 할 때와 ‘~님’이라고 할 때 정도 수준의 차이 같은 게 있다는 뜻으로 느껴집니다. 북한의 <조선말예절법>(1983)은 “사회적인 직위나 직급, 칭호와 관련한 이름말을 높이기 위해서는 ‘동지’를 붙인다. ‘동지’ 대신 ‘동무’를 붙이는 것은 이름이나 이름말(호칭)만 쓰는 것보다 조금 높이는 것으로 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동무’보다는 ‘동지’가 높다는 거지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붙이는 호칭으로서 ‘동무’, ‘동지’, ‘아바이’ 등의 표현이 원래는 다른 뜻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 ‘집단=1차관계’…‘집단 성격 호칭’ 사용”
북한의 <조선말대사전>(1992년)은 ‘동지’를 “사상과 뜻을 같이하고 같은 목적을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 ‘동무’는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혁명대오에서 함께 싸우는 사람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로 각각 정의합니다. 사실 아무나 부를 수 있는 호칭으로 쓰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단어지요.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모두 ‘함께 싸우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얘기니까요.
‘아바이’의 원래 뜻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를 친근한게 부르는 말”(조선말대사전)이지만, 그 어원은 할아버지나 영감을 뜻하는 북쪽 방언입니다. 결국 누군가 낯선 이를 ‘아바이’라고 부르는 건, 혈족이 아닌 이들을 혈족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호칭인 셈입니다.
중립적으로 여겨지는 ‘~씨’나 ‘~님’이 아니라, 이처럼 정치적·가족적 의미를 지닌 호칭을 북한이 쓰는 배경엔 집단성과 동질성을 우선시하는 정치적 고려가 있다는 게 임칠성 전남대 교수(국어교육학)의 분석입니다. “북한 호칭·지칭의 집단적 성격은 주체사상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단위로서의 가족의 역할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보다는 집단 관계가 더 일차적인 관계로 인식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임칠성, <북한의 호칭·지칭 연구>, 2002년)
‘개인화’ 풍조에 대한 경고
이번에 나온 <문화어학습>은 ‘동지’나 ‘동무’를 호칭을 쓰자고 홍보하려는 목적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 잡지에 실린 또다른 논문 ‘학생들이 지켜야 할 언어예절’에서는 “서로 돕고 이끌며 한 형제처럼 생활하는 우리나라(북한)에서는 학생들 사이에 서로 이름이나 사회적 직무의 뒤에 ‘동무’를 붙여서 부르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글이 나왔는지 의도도 비교적 명확합니다. 임 교수의 지적대로 북한은 개인이나 가족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를 추구해왔는데, 최근 인민들 사이에선 여러 이유에서 개인과 가족이 더 중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에서도 요즘 젊은 세대는 ‘동지’, ‘동무’ 같은 표현을 워낙에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다시 써야 한다고 홍보하고 나선 건, 외래 문화에 대한 방어적 캠페인성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근래 북한 사회에선 시장경제적 요소의 확산과 외래문화 유입, 이동통신 보급 등의 이유에서 신세대를 중심으로 개인화 풍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여러차례 제기된 바 있습니다.
시장경제·외래문화 유입과 이동통신 보급
북한은 최근 주민들의 ‘개인화’ 풍조에 대해 무척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월6일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사설에서 “가사(집안일)보다 국사(나랏일)를 귀중히 여기는 애국헌신의 기풍을 높이 발휘해나가야 한다. 개인의 안일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불건전한 사상 요소들이 절대로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과거 북한에서 ‘너’(사용빈도 수 286위), ‘당신’(450위) 같은 말보다 더 많이 쓰였던 ‘동무’(50위), ‘동지’(70위) 같은 호칭을 부활시켜서 개인화의 흐름을 막아보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도는 과연 그 뜻을 이룰 수 있을까요?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