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회)에 참석하고 있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30일 싱가포르에서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과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한·일, 4년만에 국방장관 회담
구체적 사안 미묘한 차이
향후 실무 협의 난항 예상
구체적 사안 미묘한 차이
향후 실무 협의 난항 예상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30일 4년 만에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일본은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가 한국의 주권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한국의 입장에 공감했으며, 한-일 두 나라는 추가 실무협의를 통해 이런 우려를 해소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한-일간 미묘한 시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향후 실무협의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낳았다.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참석 중인 한민구 국방장관은 이날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을 만나 회담하는 자리에서 “한반도 안보 및 우리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자위권 행사는 우리의 요청 또는 동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전달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다. 이에 대해 나카타니 방위상은 “어떤 경우에도 국제법에 따라 타국의 영역에서 자위대가 활동할 경우 해당 국가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방침”이라며 “이것은 한국에도 당연히 해당된다”고 답변했다. 한국의 사전 동의 없이는 한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에 자위대를 파견하지 않겠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선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한 장관은 이날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 또는 미 증원군의 한반도 전개 문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한·미 연합방위체제에 따라 한·미간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해 7월 의회에 출석해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 기지에서 미 해병대가 출동하려면 일본 정부의 양해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나카타니 방위상은 “한국 쪽의 생각을 잘 들었다. 여기서 답변이 제한된다. 앞으로 협의 기회에 논의하길 희망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 장관의 입장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 장관은 지난 17일 나카타니 방위상이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일본이 보복 공격에 참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서도 “북한도 헌법상 한국의 영토다. 사전 협의와 동의가 필요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나카타니 방위상은 “한 장관의 의견을 잘 들었다. 바로 대답하기 어려우니 추후 협의 기회에 다시 논의하자”고 피해갔다.
일본은 지난달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에 따라 11개 안보법제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 장관은 이 안보법제 개정 과정에서 일본의 자위대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반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나카타니 방위상은 “이미 자위대법 88조에 ‘자위대의 무력공격 행사 때는 국제법규와 관례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에 제3국의 사전동의가 내포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향후 안보법제 개정 과정에서 추가적인 ‘사전 동의’ 문구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은 이런 인식의 차이를 향후 실무협의를 통해 해소해 나갈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안들을 군사적 수준에서 상정해 ‘이런 경우에는 일본이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방식으로 협의를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반도 유사시 한·미 연합전력이 함께 대응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미국도 관련이 있다”며 “한-일간에는 기존의 국방정책실무회의를 통해, 한-일 간에는 한미안보정책구상(SPI)를 통해, 한-미-일 3국간에는 ‘3국 안보토의’(DTT)를 통해 실무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반도 유사시 한-일 간에 이해관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를 서로 조정하고 협의해 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는 일본의 아베 정권이 미군의 후방지원을 명분으로 한반도에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가능성이 높아,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경계하는 한국의 입장과 충돌할 공산이 크다.
일본은 이날 또 한-일 양자간 정보보호협정(GSOMIA)과 군수상호지원협정(ACSA) 체결을 요청했다. 지난해말 한-미-일 3국간 정보공유약정을 맺었지만, 일본은 이 약정의 적용 대상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에 한정된 점에 대해 불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협정이 아닌 약정 형식이 자국의 법체계와 맞지 않다는 점도 일본이 추가적인 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배경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 장관은 일본의 요구에 대해 “군사적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역사 문제와 관련해 신중히 검토할 의제라고 본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밖에 한-일은 실질적인 안보 협력을 증진시켜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양국은 이에 따라 오는 10월 일본이 요코스카 항에서 개최하는 관함식에 한국 함정이 참가하기로 했으며, 격년제로 실시되는 수색·구조훈련(SAREX) 실시에 동의했다. 또 대 해적작전 실시, 한·일간 중첩된 방공식별구역에서 우발사고 방지를 위한 협의 진전, 유엔 평화유지군(PKO) 활동 이나 인도주의 차원의 협력 방안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추후 한-일 장관회담을 또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하 한 장관은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한 장관은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비전투 분야 교류를 포함해 실질적인 안보 협력은 증진시켜 나가되 고위급 회담 등 민감한 사안은 역사 문제 등 여건과 상황을 고려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사와 안보 문제를 분리하겠다는 게 정부 정책이지만 두 문제가 전혀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뒤이어 열린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3국 장관이 ”북한의 핵무기 및 투발 수단의 보유와 지속적인 개발을 변함없이 반대한다”며 이들 프로그램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두 장관은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동맹은 어떠한 도발도 단호히 공동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싱가포르/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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