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이 지난해 11월 출범한 이후 방산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합수단은 올 연말까지 수사를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이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비리가 단죄받을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여론의 지탄이 쏟아지고 있다.
합수단이 15일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를 보면, 밝혀진 비리사업 규모가 9809억원이나 된다. 그동안 기소된 인사도 전 해군참모총장 2명을 포함해 전 국가보훈처장, 현역 및 예비역 장성 10명 등 모두 63명에 이른다. 해군이 수상함구조함인 통영함과 소해함의 음파탐지기 납품부터 해상 작전헬기 구매 등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8402억원 규모의 혐의가 드러났다. 육군은 특전사 방탄복 납품 비리와 K-11 복합소총 납품 비리 혐의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공군은 공군전자전훈련장비(EWTS) 납품 비리 등으로 수사선상에 올랐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사고 때 통영함이 음파탐지기 불량으로 구조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거진 방산비리 혐의가 합수단 수사가 진행되면서 육·해·공 전군으로 확대된 것이다.
방산비리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3년 율곡사업 비리로 이상훈·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 등 군수뇌부가 구속됐고, 3년 뒤 경전투 헬기 사업과 관련해선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 등의 수억원대 뇌물 수수가 드러난 바 있다. 최근 들어서도 2011년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 등이 후배 현역장교들로부터 공군전력증강 사업 관련 기밀을 빼내 록히드마틴 등 해외 군수업체에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고, 2013년에는 군수품 생산업체들이 부품의 시험·분석 성적서 255건을 위조한 사건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2006년 방사청 개청 뒤
권력형 비리 줄었지만
영관급 연루 실무자 비리 늘어
방탄복부터 구조함까지 검은 거래 군 특유의 폐쇄적 계급문화
정보독점 고리로 한 유착관계 토양
구조적 비리 이어져 기무 제구실 못하며 감독 사각지대
군 투명성 강화 대책 내놨지만
‘끼리끼리’ 관행 탈피 여전히 과제 이처럼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 데에는 군 특유의 폐쇄적 계급문화가 큰 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상명하복의 의사결정에 익숙한 군 문화에서 상급자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방위사업청(방사청) 개청은 이런 군 조직의 특수성 등을 겨냥한 조처였다. 1990년대 ‘율곡비리’ 등으로 국방부 장관이나 각 군 총장 등 군 최고수뇌부들이 직접 연루되는 ‘권력형 비리’가 문제가 되자, 군 고위인사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 조직에서 획득 업무를 맡도록 한 것이다. 방사청 개청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가 줄어든 대신 실무를 담당하는 영관급 장교들이 연루되는 ‘실무자급 비리’가 늘어났다. 실무자들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업계의 로비 대상도 군 고위인사에서 영관급 장교로 이동한 것이다. 또 예비역들이 무기중개 업체 등의 임직원으로 활동하면서 군 후배인 현역들에게 로비하는 구조도 여전하다. 실제 이번 통영함의 부실 음탐기 도입 과정에서도 김아무개 예비역 대령이 바로 정옥근 당시 해군총장의 사관학교 동기인 점을 내세워 납품사인 하켄코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방위사업 자체의 기밀성과 폐쇄성도 배경으로 꼽힌다. 사업 자체가 군사기밀과 관련되어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의 중기계획이나 각 군의 무기 소요 계획 등 기밀로 관리되는 방위사업 관련 내용은 이를 미리 빼내려는 업체들의 핵심 표적이 되고 있다. 여기서 군사기밀을 둘러싼 정보거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퇴직자-실무자-수요군-업체의 유착관계는 정보 독점성에 따른 ‘군피아’ 또는 ‘방피아’로 인식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군사기밀 유출 수사와 보안 점검 등을 맡고 있는 기무 요원들은 제구실을 해내지 못했다. 특히 공군전자전훈련장비(EWTS) 도입 비리에 연루된 일광공영의 기무 업무를 담당하는 기무 요원은 직접 뇌물을 받고 군사기밀을 제공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됐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방위사업 혁신 전담팀(TF)을 구성했고, 군납비리 신고 포상금을 최대 5억원까지 지급하는 등 모니터링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책도 내놓은 바 있다. 또 지난달에는 투명성과 전문성, 효율성 강화를 목표로 순환형 보직 관리와 정보공개 확대, 비리자 처벌 강화, 방산지정제도 정비 등 18개의 장·단기 개혁과제도 선정했다. 방사청은 올 초 과장급 인사에서 사업관리본부의 현역군인 팀장 비율을 70%에서 50%로 줄이는 대폭적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이번 합수단 수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함정사업부의 경우 8개 팀장 중 해군팀장을 6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공무원 4명, 육군과 공군을 1명씩 임명했다. 또 지난 5월에는 2017년까지 현행 49%인 군인의 비율을 30%로 축소하고 공무원 비율을 70%로 확대한다는 조직 개편안도 내놓았다. ‘끼리끼리’ 문화를 바꿔 군 선후배의 줄을 타고 내려오는 비리의 소지를 줄이겠다는 의도이다. 이에 대해 군 내부에서는 “육군이나 공군 출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해군 함정 사업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방사청 관계자는 “획득업무 일반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만 있으면 업무 추진에 별문제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시각에서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통용돼온 관행들을 다시 점검하고 개선해나갈 여지가 많다”고 반박했다. 또 방사청 조직 개편에 따라 2017년까지 각 군으로 돌아가야 하는 군인 300명의 처리 문제 등을 둘러싼 군내 반발을 어떻게 넘어설지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권력형 비리 줄었지만
영관급 연루 실무자 비리 늘어
방탄복부터 구조함까지 검은 거래 군 특유의 폐쇄적 계급문화
정보독점 고리로 한 유착관계 토양
구조적 비리 이어져 기무 제구실 못하며 감독 사각지대
군 투명성 강화 대책 내놨지만
‘끼리끼리’ 관행 탈피 여전히 과제 이처럼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 데에는 군 특유의 폐쇄적 계급문화가 큰 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상명하복의 의사결정에 익숙한 군 문화에서 상급자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방위사업청(방사청) 개청은 이런 군 조직의 특수성 등을 겨냥한 조처였다. 1990년대 ‘율곡비리’ 등으로 국방부 장관이나 각 군 총장 등 군 최고수뇌부들이 직접 연루되는 ‘권력형 비리’가 문제가 되자, 군 고위인사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 조직에서 획득 업무를 맡도록 한 것이다. 방사청 개청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가 줄어든 대신 실무를 담당하는 영관급 장교들이 연루되는 ‘실무자급 비리’가 늘어났다. 실무자들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업계의 로비 대상도 군 고위인사에서 영관급 장교로 이동한 것이다. 또 예비역들이 무기중개 업체 등의 임직원으로 활동하면서 군 후배인 현역들에게 로비하는 구조도 여전하다. 실제 이번 통영함의 부실 음탐기 도입 과정에서도 김아무개 예비역 대령이 바로 정옥근 당시 해군총장의 사관학교 동기인 점을 내세워 납품사인 하켄코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방위사업 자체의 기밀성과 폐쇄성도 배경으로 꼽힌다. 사업 자체가 군사기밀과 관련되어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의 중기계획이나 각 군의 무기 소요 계획 등 기밀로 관리되는 방위사업 관련 내용은 이를 미리 빼내려는 업체들의 핵심 표적이 되고 있다. 여기서 군사기밀을 둘러싼 정보거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퇴직자-실무자-수요군-업체의 유착관계는 정보 독점성에 따른 ‘군피아’ 또는 ‘방피아’로 인식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군사기밀 유출 수사와 보안 점검 등을 맡고 있는 기무 요원들은 제구실을 해내지 못했다. 특히 공군전자전훈련장비(EWTS) 도입 비리에 연루된 일광공영의 기무 업무를 담당하는 기무 요원은 직접 뇌물을 받고 군사기밀을 제공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됐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방위사업 혁신 전담팀(TF)을 구성했고, 군납비리 신고 포상금을 최대 5억원까지 지급하는 등 모니터링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책도 내놓은 바 있다. 또 지난달에는 투명성과 전문성, 효율성 강화를 목표로 순환형 보직 관리와 정보공개 확대, 비리자 처벌 강화, 방산지정제도 정비 등 18개의 장·단기 개혁과제도 선정했다. 방사청은 올 초 과장급 인사에서 사업관리본부의 현역군인 팀장 비율을 70%에서 50%로 줄이는 대폭적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이번 합수단 수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함정사업부의 경우 8개 팀장 중 해군팀장을 6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공무원 4명, 육군과 공군을 1명씩 임명했다. 또 지난 5월에는 2017년까지 현행 49%인 군인의 비율을 30%로 축소하고 공무원 비율을 70%로 확대한다는 조직 개편안도 내놓았다. ‘끼리끼리’ 문화를 바꿔 군 선후배의 줄을 타고 내려오는 비리의 소지를 줄이겠다는 의도이다. 이에 대해 군 내부에서는 “육군이나 공군 출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해군 함정 사업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방사청 관계자는 “획득업무 일반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만 있으면 업무 추진에 별문제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시각에서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통용돼온 관행들을 다시 점검하고 개선해나갈 여지가 많다”고 반박했다. 또 방사청 조직 개편에 따라 2017년까지 각 군으로 돌아가야 하는 군인 300명의 처리 문제 등을 둘러싼 군내 반발을 어떻게 넘어설지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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