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9·19 공동선언 10돌’ 이종석 전 통일장관 인터뷰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17일 ‘9·19 공동성명’ 10돌을 앞두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조건을 앞세우지 말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6자회담 재개를 촉구했다. 그는 “북한이 핵실험을 세 차례 하는 등 상황이 9·19합의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며 “우선은 핵동결이라도 해놓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핵포기로 가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한과 미·중·러·일 등 6개국이 지난 2005년 서명한 9·19 공동성명의 핵심 내용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그 댓가로 나머지 5개국이 경제지원과 안전보장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당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을 맡아 북핵 6자회담 9·19 합의의 산파 구실을 했다.
6자회담 재개해야 북 생각도 알아
우선 핵 동결뒤 핵 포기안 찾아야 9·19성명 이행과정 불신벽 못넘어
유엔 안보리 제재도 별효과 없는데
기존정책 고수 ‘고강도 제재’만 운운 미 안움직여…정부가 새국면 열어야 -북핵 문제 해결의 신기원을 열었던 9·19 합의 10돌인데.
“9·19공동성명은 북핵 해결의 기본 이행 경로와 원칙 방향에 대한 남북과 미·중·러·일 등 6자의 합의문이다. 더 나아가 핵문제를 넘어 한반도평화체제의 확립과 동북아의 안보협력 추구에 관한 6개국의 첫 합의문이다. 북미, 북일 관계의 정상화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북아의 적대적 대결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한국은 합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로 국제무대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당시 200만㎾ 대북송전을 포함한 ‘중대제안’으로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했고, 협상 교착 상황이나 문구 조정 과정에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과 협력해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냈다.”
-합의가 이행되지 못했는데.
“6자회담 틀은 미국이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 이후 만든 것이다. 애초 북-미 직접대화를 피하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끌어들여 5대 1 구도를 만들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일방주의와 대북 강경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은 미국이 오히려 몰리는 역 5대1 구도가 형성되고, 각국의 이해가 조율되면서 9·19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행과정에서 끝내 불신의 벽을 넘지 못했다. 북핵 해결 과정이 북-미 등의 대결적 불신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과 연동되어 추진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9·19 공동성명에 대해 미국 내 ‘네오콘’들은 못마땅해했다. 결국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사건이 일어나고, 검증 과정에서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좌절됐다.”
-6자회담은 여전히 작동불능인데.
“합의 문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신뢰를 쌓으려는 일련의 과정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게 입증됐다. 북한이 ‘위성 발사는 주권 사안’이라며 로켓을 발사하면, 유엔 안보리에 달려가서 규탄 성명을 낸다. 그러면 북한은 이에 반발하여 핵실험을 하고 안보리는 또 제재하는 악순환 과정이 2009년과 2013년 두 차례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시사했는데 막을 방안이 있나? 없다. 그냥 북한의 의지에 달렸다. 로켓 발사가 우리가 보기에 북한에 남는 장사가 아니지만 그들의 셈법이 우리와 다르다. 정책이 실패했으면 새로운 대안을 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대북 적대감에 기대서 그냥 허장성세식으로 ‘강도높은 제재’ 운운하며 지나간다. 이건 모럴 해저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대화를 해야 한다. 조건을 달아 6자회담을 안하는 것은 문제다. 얘기를 해봐야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 있고, 그래야 대책이 나오는 것 아닌가. 미국은 안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미 북한의 핵 수출을 막는 비확산정책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의지를 갖고 새 국면을 열어야 한다.”
-10년 전과 상황이 달라졌는데.
“9·19 합의 때는 북한이 핵 실험하기 전이고, 지금은 세 번이나 했다. 경제와 핵개발 병진노선도 천명하고 있다.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을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6자회담을 열어야 한다. 우선은 핵동결이라도 해놓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핵포기로 가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떤 장기적 방안이 있나.
“북한이 김정은 체제 들어 개방으로 가고 있다. 북한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도와줘, 북한이 국제사회와 연결되는 과정에서 새 삶의 패턴을 선호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핵을 포기시키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북한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압박·고립책은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전체적으로 적대적 대결구조를 해소하는 과정과 북핵 해결의 새로운 합의 과정이 동시에 가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우선 핵 동결뒤 핵 포기안 찾아야 9·19성명 이행과정 불신벽 못넘어
유엔 안보리 제재도 별효과 없는데
기존정책 고수 ‘고강도 제재’만 운운 미 안움직여…정부가 새국면 열어야 -북핵 문제 해결의 신기원을 열었던 9·19 합의 10돌인데.
2005년 9·19 공동성명 핵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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