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방위상, 20일 국방회담때 “한국 지배범위는 휴전선 남쪽”
국방부, 민감내용 감추기 급급…일본 정부 공개 뒤에야 시인
‘한국 동의없이 북 진입’ 기정사실화 전략…정부는 속수무책
국방부, 민감내용 감추기 급급…일본 정부 공개 뒤에야 시인
‘한국 동의없이 북 진입’ 기정사실화 전략…정부는 속수무책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2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의 주권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국방부는 회담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이런 핵심 발언을 공개하지 않았을뿐더러 일본 쪽의 브리핑 뒤 관련 사실을 문의한 언론에도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하다 이튿날인 21일에야 시인했다. 정부의 ‘고의 은폐’ 논란과 함께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 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21일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나카타니 방위상이 전날 한-일 장관회담에서 ‘대한민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이른바 휴전선 남쪽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일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잘 협의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자위대가 북한 영역에 진입할 때는 한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한 반박 성격이 강했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북쪽 지역 진입 문제가 ‘협의 대상’이 될 순 있지만 ‘사전 동의 대상’은 아니라는 민감한 발언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전날 기자 브리핑에서 앞쪽의 ‘휴전선 남쪽’ 운운 발언은 쏙 빼고 뒤쪽의 “한·미·일 간 긴밀한 협력” 부분만 공개했다. 나카타니 방위상의 해당 발언은 방위청 관계자가 회담 뒤 서울에서 일본 기자들한테 회담 관련 배경 설명을 해 알려졌다. 국방부 당국자는 21일 이 부분을 숨긴 사실과 관련해 “정확한 발언 내용을 회의록에서 확인하느라 (공개가) 늦었다”며 “나카타니 방위상의 발언은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핵심 논점을 피해갔다.
국방부의 이런 ‘쉬쉬’하는 태도는 자위대의 구실을 한반도 등으로 확대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 당국자는 “한-일간 (비공개)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번에 비공개 약속을 깨고 북한 영역에 대한 자위대의 군사적 자율성 발언을 공개했다. 일종의 ‘기정사실화’ 전략이다. 한국 정부는 ‘비공개 합의’만 믿다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문제는 국방부가 이처럼 민감한 내용을 비공개하면서 ‘밀실 협상’ 논란을 불러,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의혹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전직 외교·안보분야 당국자는 “한-일 관계는 국민정서상 민감하므로 어렵더라도 투명하게 진행하며 국민적 합의를 모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북한 진입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은 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자칫 조선 말기처럼 일본이 한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시 한반도에 출병하는 상황을 지켜보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한·미·일 3자 안보토의(DTT)의 틀’에서 논의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우리의 영토 주권은 타협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일 간) 협력과 협의가 필요하다. 협의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유엔 회원국으로 국제법상 독립된 주권국가란 점에서 ‘헌법상 북한도 우리 영토’란 주장만으로 국제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대로) 남북관계가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점, 북한 문제는 우리의 안보 환경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점 등을 들어 일본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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