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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살아있어야 해”…“어떡해 어떡해”…다시 아득한 이별

등록 2015-10-22 19:39수정 2015-10-22 22:31

제20차 이산가족 1회차 상봉행사 마지막날인 2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앞에서 남쪽 이순규 할머니(맨 앞줄 오른쪽)가 신혼 때 헤어진 남편 오인세 할아버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20차 이산가족 1회차 상봉행사 마지막날인 2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앞에서 남쪽 이순규 할머니(맨 앞줄 오른쪽)가 신혼 때 헤어진 남편 오인세 할아버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차상봉 헤어지는 날
북녘의 삶터로 돌아가야 할 이들은 버스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남녘으로 돌아가야 할 이들은 버스 주변을 맴돌며 애타게 손을 뻗쳤다. 아흔을 앞둔 이들이 북녘의 피붙이를 실은 버스를 쫓아 내달렸다. 버스를 두드리고 창문을 쳤다. 마침내 놓을 수밖에 없는 손, 그 손을 놓을 수 없어 했다. 버스는 떠나고 안타까운 손들만 남았다. 22일 오전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금강산 자락에서 65년 전 생이별이 재현됐다. 2박3일의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1회차 행사가 이산의 또다른 상처를 깊이 남기며 끝났다.

이날 오전 9시(이하 북쪽 시각, 남쪽보다 30분 느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자리에 앉은 남쪽 가족들은 붉어진 눈자위에 퉁퉁부은 눈으로 입구만 바라봤다. 마지막 작별상봉 자리에 북쪽 가족들이 들어서자 모두들 벌떡 일어섰다. 이들한텐 마지막 2시간만 남았다. 모두들 부둥켜안고, 귓속말을 하고, 등을 쓰다듬으며, 손을 맞잡았다. 등에 업고 어깨동무도 했다. 그들은 몸으로 이별을 시작하고 있었다.

북쪽 손권근 할아버지(가운데)가 22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마지막날 두시간 동안의 작별상봉을 마치며 여동생 권분(오른쪽)씨 등 남쪽 가족을 부둥켜 안으며 울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북쪽 손권근 할아버지(가운데)가 22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마지막날 두시간 동안의 작별상봉을 마치며 여동생 권분(오른쪽)씨 등 남쪽 가족을 부둥켜 안으며 울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무겁게 구름앉은 금강산 자락
버스 창으로 손을 내밀고
밖에선 애타게 창문을 쳤다
버스는 떠나고
기약없는 이별만 남았다

북쪽 오인세(83)씨는 아내 이순규(85)씨 곁에 앉았다. 이씨는 새색시마냥 남편의 넥타이를 고쳐주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들 장균(65)씨는 아버지 손을 잡고 해맑게 웃었다. “건강한 아들로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얼굴이 벌개진 아들도 눈물을 떨궜다. 오인세씨는 아내와 아들, 며느리를 한 데 안았다. “이렇게 안는 것이 행복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 “건강하슈, 오래사슈.” 아내의 마지막 말이다. 아들 내외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만수무강하시라”며 태어나 처음으로 2박3일간 눈에 새긴 아버지께 큰절했다. 남쪽 채희양(66)씨는 아버지한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받아든 채훈식(88)씨가 눈물을 쏟아냈다. “고맙다. 어머니 잘 모시고… 조국통일 되는 날 다시 만나는 게 소원이다.” 불혹에 들어선 두 손자는 할아버지 볼에 입을 맞추고 사진으로 남겼다.

북쪽 최고령자인 리홍종(88)씨의 남녘 딸 정숙(68)씨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드릴 수 있다”며 통곡했다. 리씨가 북에서 낳은 아들 인경(55)씨는 애써 외면하며 시선을 돌렸지만 눈물이 떨어졌다. 리씨의 남쪽 동생 홍옥(80)씨는 오빠의 손을 붙잡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오빠 어떡해… 오빠 어떡해….”

북쪽 예해수(오른쪽)씨가 22일 오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마지막 상봉에서 남쪽 동생들의 큰절을 받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북쪽 예해수(오른쪽)씨가 22일 오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마지막 상봉에서 남쪽 동생들의 큰절을 받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북녘 누나 박룡순(82)씨의 동생 용득(81)씨는 큰소리쳤다. “누님 내가 차로 북으로 보내줄게. 그러니 오늘은 우리 같이 서울 가자. 2~3일만….” 둘째 동생 고웅(76)씨는 “어릴적 누님이 항상 업어줬다”며 누나를 등에 업었다. “65년 전에 이렇게 될지 모르고 울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또 이별해야 해.”

면회소 곳곳에서 눈물 젖은 말들이 끝없을 듯 오갔다. ‘고향의 봄’이 울려퍼지던 상봉장에 오전 10시50분 작별상봉 마지막 10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곤 이별의 노래 ‘다시 만납시다’가 흘러나왔다. 더욱 다급해졌다. “아프지 마세요.” “걱정하지 말아요.” “식사 잘 하세요.” “마음 편하게 가져요.” “살아있어야 해.” “다시 만날 거야.” 버스가 떠나고 누군가를 불러대는 소리가 면회소 앞을 울렸다.

남과 북의 상봉단장인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리충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함께 잘 해보자”며 손을 맞잡았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의 2회차 행사는 24~26일 금강산에서 이어진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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