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은 애초 식량지원으로 시작했지만 2004년 북한의 요청에 의해 개발지원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개발지원으로 바뀌면서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개발지원사업은 제대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중단되는 운명을 맞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지원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북쪽 관계자가 신의주역에 도착한 대북지원용 옥수수를 살펴보는 모습(1998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제공
‘뒤돌아보면 이룩해놓은 성과가 거대하지만, 앞을 다시 바라보면 가야 할 길 또한 아직 멀다.’
올해로 20년을 맞는 대북지원 활동의 현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식량지원이나 개발원조 등 북한을 돕는 각종 활동을 가리키는 대북지원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5년 9월 본격 시작됐다. 같은 해 8월 북한이 큰물 피해 등을 이유로 유엔에 긴급구호활동을 요청한 직후였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고 이름붙인 시기가 본격 시작된 것이다.
이후 대북지원은 크고 작은 성과를 낳으면서 지원을 받는 북한뿐만 아니라, 지원에 참가한 남한 및 세계 각국, 그리고 국제 엔지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대북지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각종 단체나 기구들의 북한 지원 활동이 지금도 중요하다는 의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의 관계’ 등 대북지원의 역할이 변화된 정세에 맞게 재정립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북지원 20년 ‘2015 국제회의’
킨텍스 등서…오늘부터 이틀간
국내외 대북지원 산증인들 참석
1995년 북 큰물 피해 구호로 시작
북주민 영양상태·의식개방 기여
지원 최대 효과 ‘남북 긴장완화’
MB정부 때부터 지원 규모 급감
“긴장완화 넘어 공동번영 동력”
국제사회·한국에 공동호소문 발표
11월3일(장소 경기도 고양 킨텍스)과 4일(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 열리는 ‘2015년 대북지원 국제회의’는 강산이 두번 바뀌는 기간 동안 진행돼온 대북지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자리다. 경기도, 제주도,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등 대북지원활동에 깊이 관여해온 기관들이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2009년 이후 해마다 ‘대북지원 국제회의’를 조직해온 대북지원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주최자이면서 조직자로 참여했다.
국제회의에는 대북지원 원년부터 활동해온 인사들을 포함해 전세계의 대표적 대북지원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특히 북한의 지원 요청 이전인 1995년 4월 북한을 처음 방문한 뒤 2006~2011년 평양에 거주하며 스위스국제개발청(SDC) 평양사무소장을 지낸 카타리나 첼베거와 2009년 1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 대표로 활동했던 제롬 소바주가 눈에 띈다. 이밖에도 북한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최초의 엔지오 대표이며 캐나다와 북한의 2001년 국교 수립에 기여한 에릭 와인가트너 전 웹진 <캔코르>(CanKor, 캐나다-코리아) 편집장, 북한 내 식량농업기구(FAO)의 긴급지원 코디네이터였던 존 오디 현 유럽연합(EU) 집행위 산하 인도지원사무국(ECHO) 기술자문도 눈여겨볼 만한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최혜경 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등이 참여한다.
국제회의에서 발표하게 될 이들의 발제문 등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의 대북지원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무엇보다 주민들을 기아선상에 머물게 했던 북한의 식량사정과 영양상태가 개선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첼베거 전 평양사무소장은 북한 주민의 영양상태가 “이제 아시아권의 다른 국가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발육부진과 급성영양실조의 경우 “오히려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등 중소득국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미얀마, 네팔 등보다 나은 상태”라고 진단한다.
남북협력사업의 하나로 진행된 평양 강남군 당곡리 벼 시범농장의 수확 모습(2006년).
물론 북의 이런 변화가 대북지원에만 의존한 결과는 아니다. 첼베거 전 소장은 대북지원과 함께 “기상조건의 호조, 영농자재 구입 용이, 개인농업 허용 확산, 북한 정부의 식량 수입 확대, 시장활동 증가, 현금 조달능력 향상 등 북한의 자체 노력도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참가자들은 대북지원 또한 식량 사정 향상에만 기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첼베거 전 소장은 “대북지원이 북한 주민들을 개방적인 마인드로 이끄는 주요한 통로”라고 강조한다. 그는 “오늘의 북한 사회는 20년 전과는 많이 다르다”며 “북한의 지방공무원과 행정당국이 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더욱 개방적이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이런 변화가 “‘원조개입’에 따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북한 주민의 수가 많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회에 참석한 한국 참석자들은 대북지원이 한반도 평화 구축의 중요한 기둥 구실을 해왔음을 강조한다. 정현백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지난 20여년 동안의 대북지원은 북한 주민의 인식전환과 북한 사회 변화의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며 대북지원의 가장 큰 효과로 ‘남북 긴장완화’를 꼽았다. 최혜경 사무총장도 남북간의 긴장이 조성되었을 때 “대북지원단체는 남북한 의사소통을 우회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통로였다”며 “대북지원 사업이 한반도 긴장 극복과 평화 관리자로서 한반도 평화기반을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북한이 이렇게 극한적 식량난에서 벗어났고,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다면 대북지원은 이제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된 것 아닐까? 사실 이미 현실에서는 전체적인 대북지원 규모가 상당히 축소된 상태다. 특히 남한의 경우 이명박·박근혜 정부 등장 이후 지원액이 크게 줄었다. 강영식 사무총장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경우 2014년 대북지원 물자 총액은 약 2억4천만원”이라며 “이는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에 비해서는 거의 4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이 단체의 출범 첫해인 1996년 지원액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라며 “최근 한국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이 약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북지원 활동가들은 대북지원의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우선 북한 주민의 영양상태에서 볼 때도 아직은 대북지원이 필요하다. 오디 기술자문은 북한 주민들의 상당수,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 등이 비타민A, 철분, 아연 등 미량 영양소 결핍 문제를 겪고 있다고 전한다. 북한의 식량난이 완화되고 아시아의 다른 빈국과 비슷하거나 나아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북한 주민들 중 영양상태 개선이 필요한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한반도 평화의 버팀목이라는 역할만 보더라도 대북지원사업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강영식 사무총장은 “지금 상황은 남북 간의 신뢰가 쌓이지 않아서 인도적 대북지원도 막혀 있는 처지”라며 “선순환 관계여야 할 인도적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구축이 오히려 악순환에 빠져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혜경 사무총장은 다시 이 관계를 선순환으로 돌리기 위해 “북민협 차원에서 지난 2014년부터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 공동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대북협력사업의 새로운 목표와 과제를 설정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지난 20년간 대북사업은 북한 주민의 건강상태뿐 아니라 의식 변화를 주도했으며, 한반도 평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국제회의 참석자들은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대북지원이 앞으로도 남북 모두의 변화를 통해 한반도가 긴장 완화를 넘어서 공동번영을 이루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이에 따라 오는 11월5일 대회 마지막날 전세계를 대상으로 대북지원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 호소문’을 참석자 전원의 이름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문의 02)734-7070.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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