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동맹 창립 70돌 대중연설
작년 11월 종적 감춰 혁명화교육설
작년 11월 종적 감춰 혁명화교육설
북한의 ‘빨치산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최룡해(66) 노동당 비서가 두 달 반 만에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양에서 지방으로 쫓겨나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복권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창립 70돌 경축행사 대표증 수여’ 행사가 열렸다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최룡해 동지가 연설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최 비서는 “수소탄 시험의 대성공으로…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노동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에서 영웅조선청년들의 기개와 의지를 과시”하자고 강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은 북한의 대표적인 청년 근로단체다. 이에 비춰 최 비서는 근로단체 담당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 비서는 청년동맹의 제1비서를 지냈고, 전신인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사로청)의 위원장도 맡았다.
장성택 숙청 이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이어 ‘2인자’또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이은) ‘3인자’로 꼽혀온 최 비서는 지난해 10월31일 <노동신문>기고 뒤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등장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지난해 11월8일 리을설 인민군 원수 장의위원 명단에서 빠져 신변 이상설이 제기됐다. 국가정보원은 당시 국회 정보위원회에 “최룡해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토사 붕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지방의 협동농장으로 추방돼 혁명화교육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었다. 이후 최 비서는 지난달 말 김양건 노동당 비서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려 복권된 것으로 관측됐지만 이어진 장례식과 김정은 제1비서의 새해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등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최 비서의 복귀가 비교적 조기에 이뤄진 점에 비춰 혁명화교육보다 가벼운 ‘근신 처분’을 받았으리란 풀이도 나온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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