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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치킨게임 벌이는 남북…시민사회, 평화위해 나선다

등록 2016-03-10 18:46수정 2016-03-10 20:53

남북한 당국이 한반도의 긴장을 경쟁적으로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사회 원로들이 ‘한반도평화회의’ 구성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긴장완화 활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근처 케이티 빌딩 앞에서 ‘한미연합 키리졸브·독수리연습 중단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남북한 당국이 한반도의 긴장을 경쟁적으로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사회 원로들이 ‘한반도평화회의’ 구성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긴장완화 활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근처 케이티 빌딩 앞에서 ‘한미연합 키리졸브·독수리연습 중단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싱크탱크 광장
‘시민이 앞장서 평화를 얘기하자.’

나날이 긴장이 고조되는 남북관계에 경종을 울리고 평화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시민사회에서는 원로급 인사들의 상시적 회의체계인 ‘한반도평화회의’ 구성을 추진하는 한편, 개별 단체들도 전쟁 방지와 평화체제에 대한 집회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시민사회가 현재 힘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평화회의 구성이다. 시민사회 원로들로 이루어지는 한반도평화회의는 이들 원로급 인사들이 항시적인 회의 체계를 갖추고 성명 등을 발표하는 방법 등을 통해 현재의 긴장 상태 완화를 촉구해나갈 계획이다. 한반도평화회의는 11일 제안자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열고 기본적인 활동원칙을 정한 뒤, 이달 안으로 첫 회의를 할 계획이다. 한반도평화회의는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여성, 학술계 등의 인사들을 망라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하는 원로들의 수는 30~50명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유동적이다.

이승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공동의장은 “현재 한반도에서는 한·미와 북한이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 매우 구조화돼 있어서 쉽게 잘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공동의장은 이런 구조화 상황이 계속 깊어지면서 “이제는 예전과 달리 실제로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공동대표는 “이에 따라 시민사회가 한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했다”며 “시민사회, 종교계, 대북지원단체, 남북경협 기업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원탁회의 같은 회의를 구성해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한반도평화회의와 같은 형태의 원로들의 상시회의체 구성은 2003년 이후 처음이라고 밝힌다. 이 처장은 “당시 미국의 부시 행정부를 중심으로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제시하면서 북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언급되던 시기”라며 “이에 따라 당시 시민사회는 물론 국회의원들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초당적으로 한반도평화회의에 참여해 전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가 한반도평화회의를 다시 구성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한반도 상황이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됐던 2003년에 비견될 만큼 출로를 찾기 힘든 상태가 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남한은 강경제재·북한은 ‘핵’ 발언
한반도 긴장 고조에 원로들 모인
상시적 ‘한반도평화회의’ 구성 추진
종교·여성·시민단체 총망라 예상

안전판인 개성공단마저 폐쇄 상황
한반도 충돌피할 상황관리 필요해
제안한 인명진 목사 “바른말 할것”
전쟁 부추기는 의원 낙선운동도 고려

6·15선언실천위·평통사 등 시민단체
개별적인 평화 여론만들기 안간힘도

사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브레이크 없는 열차를 연상시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채택 이후에도 남한 정부는 지난 7일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 키리졸브·독수리훈련을 실시하고, 8일에는 기존 5·24조치 강화 등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독자 제재안을 발표하는 등 강경 노선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4일 “실전 배비(배치)한 핵탄두들을 임의의 순간에 쏴버릴 수 있게 항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9일 또다시 “핵탄을 경량화하여 탄도로켓에 맞게 표준화·규격화를 실현했다”고 주장하며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발언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남북 당국자들의 이런 발언과 행동들이 3~4월을 거쳐 5월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 국면이 지나간다고 해도 긴장을 높일 구조적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키리졸브·독수리훈련이 4월말까지 계속되고, 4월13일에는 남쪽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북쪽에서는 36년 만에 열리는 제7차 노동당대회가 5월초로 예정돼 있다. 따라서 이런 정치 일정에 따라 남북 당국의 기싸움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남북관계가 뜨겁게 발화되는 것을 막는 안전판 구실을 해왔던 개성공단도 문을 닫은 상태다. 이런 긴장 국면에서는 자칫 조그만 실수들이 서로 기싸움을 거치면서 큰 충돌로 바뀔 수도 있다.

누군가는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상황관리를 해야 할 판국인 것이다. 중국 정부가 대북제재와 함께 한반도 정세 안정과 6자회담 등 대화 복원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이 남북한 당국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내기에는 역부족인 측면이 있다.

사실 이런 남북한 당국의 긴장 고조 행동들은 ‘국민 안전 수호’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국민 안전은 박근혜 정부도 매우 중요하게 제시해온 정책 기준이다. 박근혜 정부는 2월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 발표를 전격적으로 진행한 데 대해서도 ‘우리 국민의 안전한 귀환’을 이유로 꼽았다. 그런데 전체 국민들이 전쟁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남북관계 긴장을 높여나가고 있는 것은 이런 ‘우리 국민 안전 우선’이라는 남쪽 정부의 자기주장과도 모순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정현곤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은 “최근 정부가 너무 나간 상태”라고 진단한다. 그는 “역사가 증명하듯 남북관계의 문제 해결은 제재로는 불가능하며, 대화의 길일 수밖에 없”는데 “국가가 대화를 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강경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이렇게 국가가 너무 나갔을 때 시민사회에서 제대로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 힘이 나중에 평화의 힘으로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반도평화회의 제안자의 한 사람으로 11일 조찬모임에 참여하는 인명진 목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도 “로켓 발사, 개성공단 폐쇄, 키리졸브 훈련 등 남북관계가 퇴행하고 있지만 누구 한 사람 올바로 얘기도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며 “한반도평화회의에서는 바른 말에 기초한 기초적인 담론 제시로부터 시작해 차츰 공론의 장을 넓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제안자 조찬모임에는 도법 스님(조계종 자정과 쇄신본부 본부장)과 김영주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등 종교인들과 시민사회 원로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한반도평화회의의 구체적인 활동계획은 아직 짜이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현재의 긴장 국면을 완화할 다양한 활동들을 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회의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이승환 공동의장은 구체 활동의 하나로서 “한반도평화회의가 구성되면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발언을 한 의원들에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선거 관련 운동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구체적으로 “현재 북한하고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전술핵 도입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사람들”을 ‘안 된다’라는 기준의 대상자로 꼽았다. 또 이 공동의장은 “한반도평화회의가 결성되면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온·오프라인 서명운동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각 지역과 개별 단체들에서도 현재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부산본부가 11일 오후 4시 부산역광장에서 벌이는 ‘부산지역 제시민단체 100인 대표 평화선언’ 등이 대표적이다. 박희선 6·15 부산본부 사무처장은 “남북관계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평화를 지키는 데 대한 부산 시민사회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박 처장은 “애초 한반도 평화 촉구를 위한 성명 초안에 동의하는 100명 정도의 단체대표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재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이 200명이 넘어섰다”고 말한다. 박 처장은 “참여자들을 중심으로 매달 강연회·토론회 등을 벌이는 등 평화 여론을 이끌고 나가 2~3년 뒤에는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한 내용적 문제까지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대표적인 시민평화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도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된 7일부터 오는 25일까지를 전국 동시다발 행동 기간으로 잡고 전쟁 위기를 높이는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하는 행동을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다. 오혜란 평통사 전 사무처장은 “동시다발 행동은 서울, 인천 등 수도권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후보지로 꼽히는 평택, 군산 등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평화활동이 브레이크 없이 충돌로 치닫는 듯한 남북관계에서 어느 정도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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