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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유시진도 ‘비리 방탄복’ 입었으면 새드엔딩…‘군피아 커넥션’ 전말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6-04-06 15:45수정 2022-08-19 16:52

더(The) 친절한 기자들
고질적 방산비리 드러낸 ‘액체 방탄복’ 사건
삼양컴텍은 어떻게 국방부를 주물렀을까?
지난 3월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열린 ‘전력지원물자 획득 비리 기동점검’에 대한 감사 결과 발표에서 한 관계자가 철갑탄 방탄성능 시험으로 앞부분만 관통된 방탄판과 완전 관통된 방탄복 부위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열린 ‘전력지원물자 획득 비리 기동점검’에 대한 감사 결과 발표에서 한 관계자가 철갑탄 방탄성능 시험으로 앞부분만 관통된 방탄판과 완전 관통된 방탄복 부위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① 국방부 본래 계획까지 철회시킨 ‘결재권자 장악’

삼양컴텍이 국방부의 액체 방탄복 도입 계획을 철회하고 자사의 일반 방탄복을 납품할 수 있었던 것은 국방부 1급 공무원 ㄱ씨 덕분이었다.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ㄱ씨는 2010년 8월 군 전력지원물자 조달 업무 총괄자로 영전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3년째 북한군 철갑탄을 막을 수 있는 액체 방탄복 개발에 힘을 쏟고 있던 때다. 액체 방탄복 개발은 북한군이 2006년께 전차·군함 등을 뚫으려 개발한 철갑탄을 일선 부대에 보급하고 있다는 정보에 대응한 조처였다. 이런 가운데 2010년 11월 국방연구소가 개발한 액체 방탄복은 미국 법무부 산하 국립사법연구소(NIJ)에서 철갑탄 방호 방탄성능 시험에 합격한다. 군의 쾌거였다.

국방부는 2010년 12월24일 ‘2011~2016 피복/장구류 중기 개선 계획’을 수립해 액체 방탄복을 각 군에 조달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사업의 최종 결재권자는 ㄱ씨였다. 이 계획에 따라 육군본부는 2011년 1월14일 전투병력 32만여명에게 액체 방탄복을 2012년부터 보급하는 계획을 수립한다. 비전투병력을 제외한 전군에 보급 결정을 내린 것이다.

착착 추진되던 이 사업은 2011년 8월 갑자기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ㄱ씨와 삼양컴텍 관계자(군 출신)의 만난 이후다. 2달 뒤엔 아예 액체 방탄복 사업이 중단됐다. ‘신형 방탄복’ 사업자 선정방식도 삼양컴텍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사업방식은 연구개발 업체를 선정해 해당 업체에 독점 공급권을 주는 형식으로 변했다. 감사원이 조사한 관계자들은 이 모든 게 ㄱ씨의 지시로 시작됐다고 진술하고 있다. 삼양컴텍이 ㄱ씨에게 건넨 것으로 확인된 금품은 부인을 계열사에 위장취업시켜 지급한 월급 3900여만원 정도다.

그리고 2012년 8월10일, 삼양컴텍은 신형 방탄복 연구개발업체로 선정된다. ㄱ씨는 아흐레 뒤 퇴임했다. 삼양컴텍은 이후 10년 동안 사업비 2700억여원 등의 공급 계약을 따낸다.

장병들이 작전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병들이 작전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 내부자1, 내부자2…치밀한 정지작업

ㄱ씨는 분명 이 검은 커넥션의 핵심고리다. 그러나 결국 ‘거사’를 성사시킨 원동력은 삼양컴텍의 치밀한 정지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ㄱ씨에게 접근하기에 앞서 삼양컴텍은 우선 육군사관학교 교수 ㄴ씨를 포섭한다. 육군사관학교는 국내에서 유일한 방탄성능 시험평가 기관인 화랑연구소가 있는 곳이다. 삼양컴텍은 2009년 6월 ㄴ씨에게 퇴직 뒤 채용을 약속하고 육사 탄약고의 권총탄 반출 등을 부탁한다. ㄴ씨는 2009년 8월부터 11월까지 3차례에 걸쳐 탄약 534발을 삼양컴텍에 제공한다. 아울러 삼양컴텍 쪽에 방탄시험 성적서 37건을 허위로 발급해준다. 몇 달 뒤 ㄴ씨는 삼양컴텍 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억1000여만원어치의 주식도 받았다.

이때부터 ㄴ씨는 공식적인 삼양컴텍 쪽 사람으로 ‘영업’에 나선다. ㄴ씨는 2011년 8월 ㄱ씨를 찾아가 액체 방탄복 조달 사업 중단과 신형 방탄복 도입 사업을 제안한다.

삼양컴텍은 ㄴ씨 등 ㄱ씨와 인맥이 닿는 인물들을 앞세워 9차례에 걸쳐 ㄱ씨를 집중 공략했다. 이 과정에서 ㄱ씨에게 당시 국내에서 삼양컴텍만 보유하고 있던 북한 ㄷ소총의 보통탄 방어 성능을 신형 방탄복 평가 기준으로 넣어달라고 청탁한다. ㄱ씨는 삼양컴텍의 요구대로 군 쪽이 요구하는 방탄복 기능사항들을 정리한 군사요구도를 결정한 데 더해 전례없는 시제품 시험평가를 통한 사업자 선정방식을 추진한다. 유일하게 ㄷ소총 보통탄을 보유하고 있던 삼양컴텍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이었다. 실제 삼양컴텍은 앞서 ㄴ씨가 빼돌린 탄약으로 신형 방탄복 방호 성능시험을 했다.

이와 함께 삼양컴텍은 국방부 쪽 정보를 얻기 위해 또 다른 내부자를 끌어들인다. 과거 ㄱ씨와 같이 근무한 적이 있고, 전역을 앞둔 ㄹ씨다. ㄹ씨는 2011년 8월 삼양컴텍한테서 ‘방탄복 관련 업무를 도와주면 퇴직 뒤 취업과 55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업체선정 방식과 군사요구도 등 군 내부 정보를 삼양컴텍에 제공했다. 육군 영관급 장교로 전역한 ㄹ씨는 이후 삼양컴텍 이사로 채용돼, 급여 외 5162만원을 받았다.

③ 군 당국 속속들이 꿰고 있던 삼양컴텍

이렇듯 삼양컴텍은 국방부 구조를 속속들이 알뿐 아니라 군 당국의 사업 결정 과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고 있었다. 방탄복 사업을 따내기 위해 누구를 공략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이런 일은 군 출신 로비스트들의 존재에 의해 가능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진 것처럼 삼양컴텍이 속한 삼양화학그룹은 2008년 2월부터 2014년 5월까지 퇴역 장성 등 육군 전직 장교 29명을 계열사 등에 채용해 로비스트로 활용했다.

이번 방탄복 비리와 직접 관련성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ㄱ씨의 전임인 국방부 1급 공무원 ㅁ씨도 육군 장성 전역 뒤 삼양컴텍에 취업했던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ㅁ씨는 2006년 육군에서 전역 뒤 이듬해 삼양컴텍에 처음 적을 두게 된다. 이후 2008년 국방부 군 전력지원물자 조달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되자, 회사를 그만두고 국방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ㅁ씨는 국방부에서 퇴직한 2010년 삼양컴텍의 계열사인 제오빌더에 ‘위장취업’해 삼양컴텍의 고문역할을 수행하다가 2014년 삼양컴텍으로 복귀했다. 7년 이상 이어진 이들의 예사롭지 않은 관계에서 삼양컴텍이 군 관계자들과 얼마나 열성적으로 ‘관리’하는지 엿볼 수 있다.

감사원도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군피아 비리’로 진단했다. 삼양컴텍 계열사에 들어간 군인 29명 중 9명은 장성급으로,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상명하복이 생명처럼 여겨지는 군대에서 퇴역한 고위급 장성이 부탁을 할 경우 거절하기 어려운 군대 문화도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삼양컴텍 쪽은 퇴직 뒤 재취업 분야가 제한된 군인들에게 취직 보장과 금품 제공 등 다양한 미끼를 던지며 군 관계자들을 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 용산구의 국방부 본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 용산구의 국방부 본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④ ‘아전인수’ 국방부의 오락가락 해명

이번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국방부의 아전인수식 해명과 번복이다.

국방부는 감사결과가 발표된 이튿날인 지난달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교묘하게 사실과 다른 해명을 내놨다. 이날 해명에 나선 국방부는 당시 액체 방탄복 도입 사업은 가격과 무게 문제가 있어서 취소된 사업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액체 방탄복의 생산 단가가 마치 삼양컴텍의 일반 방탄복(84만원)보다 20여만원이 비싼 103만원에 달했던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삼양컴텍의 일반 방탄복은 앞면에만 방탄판을 넣은 가격을, 액체 방탄복은 앞·뒷면 모두에 방탄판을 넣은 가격을 제시했던 사실이 <한겨레> 취재 결과 뒤늦게 밝혀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두 방탄복의 무게가 0.1㎏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도 특전사 대테러방탄복(10.5㎏)을 언급해 마치 액체 방탄복과 삼양컴텍의 일반 방탄복 무게가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왜곡하기도 했다.

이후 사실과 다른 국방부의 해명이 도마에 오르자 문상균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그때 담당국장이 설명하면서 비교할 데이터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며 “(감사원 발표와) 약간 기준이 좀 다르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해명이 감사원과 다른 기준을 제시해 사실을 호도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문제가 된 해명을 했던 국방부 관계자도 지난달 30일 기자실을 찾아 “답변 과정에서 무게 및 가격 등 답변 내용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당시 정책 결정자들을 두둔하고자 했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삼양컴텍과 맺은 신형 방탄복 수의계약을 중지하고 일반 경쟁계약을 통해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방탄복 비리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가 수사 중이다. 육사 교수 출신 ㄴ씨는 탄약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지난달 21일 구속됐다. 삼양컴텍 대표는 지난해 별건인 ‘뚫리는 방탄복’ 납품 비리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 이 밖에도 10여명이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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