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21일 국방부 청사 브리핑룸에선 국가보훈처 관계자와 기자들 사이에 날선 신경전이 벌어졌다. 전날 보훈처가 광주 지역 호국보훈 퍼레이드 행사를 전격 취소한 사실 때문이다. 기자들은 이날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 보훈처가 사과할 의향이 없느냐’고 질의를 했다. 그러나 보훈처 관계자는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라며 이를 거부한데다, “2013년에도 광주에서 비슷한 행사를 했는데 그때는 아무 일이 없었다”며 군의 행사 참여를 반대한 5·18 단체 등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다. 행사 무산의 책임 소재 등을 놓고 공방이 이어진 이유다.
사실 사과 문제는 책임 소재와도 연결된 사안이어서 공개 석상에서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논란 와중에 보훈처의 태도에서 “내 잘못은 없다”는 빗나간 자기확신 같은 게 느껴져 안타까웠다. 보훈처의 주장대로 광주 행사는 광주지방보훈청과 광주시, 31사단 등 3개 기관이 함께 주관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전국 7개 시·도에서 실시하는 행사 전체를 기획하고 총괄한 기관은 바로 보훈처다. 광주 행사의 취소를 최종 결정한 주체도 보훈처다. 잘못은 군의 참여를 반대한 시민단체와 광주시에 있고 보훈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강변할 일이 아니다.
보훈처가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동도 유감이다. 보훈처는 5·18 단체와 시민단체들이 31사단과 11공수여단의 참여를 반대한 데 대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별로 보여주지 않았다. 이번 광주 행사에 5·18과 관련된 군부대가 참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5·18 단체를 중심으로 이들 군부대의 참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러나 보훈처는 “군의 참여가 없는 호국보훈 행사는 안 된다”는 말만 되뇌며, 광주 현지의 가슴에 사무치는 정서에 맞서는 태도를 보였다.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인 군부대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을 이해하고 이를 해소할 대안을 함께 찾기보단 자신들의 ‘원칙’만 강요한 것이다.
보훈처는 5월31일 보도자료를 내어 “국민들의 보훈의식을 1% 증가시키면 사회갈등 요인을 1.59% 감소시킨다”는 연구 보고서를 소개하며 국가보훈의 사회갈등 조정 기능을 강조한 바 있다. 과연 보훈처가 이번 행사 과정을 관리하며 사회갈등 ‘조장’이 아닌 ‘조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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