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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대북제재 국면에…한-미 ‘인도적 지원’ 온도차

등록 2016-07-20 18:51수정 2016-07-21 11:12

평양의 한 유아원 어린이들이 북한 어린이 보건의 날인 2013년 5월20일 유니세프에서 제공한 구충약을 먹고 있다. 2016년 들어 한국의 대북인도지원단체들은 북한 주민 접촉조차 금지된 상황이지만, 미국 엔지오를 비롯한 세계 엔지오 관계자들은 여전히 활발히 대북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평양의 한 유아원 어린이들이 북한 어린이 보건의 날인 2013년 5월20일 유니세프에서 제공한 구충약을 먹고 있다. 2016년 들어 한국의 대북인도지원단체들은 북한 주민 접촉조차 금지된 상황이지만, 미국 엔지오를 비롯한 세계 엔지오 관계자들은 여전히 활발히 대북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미국 대북인도지원단체 ‘CFK’ 방북
미 정부, ‘인도적 지원은 제재의 예외’ 공포 뒤
대북제재 하에서도 평양 등에서 간염 치료사업

한국은 정부가 인도지원단체의 대북 주민 접촉조차 막아
통일부 “대북제제 집중할 때” 주장만 되풀이
대북지원단체들 허용 촉구 성명…정부-엔지오 불신 깊어져
대북 인도지원을 대북제재의 예외 사항으로 규정한 미국 정부의 `일반 허가 제5호'.
대북 인도지원을 대북제재의 예외 사항으로 규정한 미국 정부의 `일반 허가 제5호'.

“평양 제2 간염 전문병원 실험실의 모습이 하루하루 바뀌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저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요. 그들(북한 주민들)은 지속적이고 영향력 있는 변화을 가져다줄 저희의 작업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북인도지원단체인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크리스천 프렌즈 오브 코리아, CFK)이 지난 6월 하순 발행한 뉴스레터에 실린 방북기 중 일부다. 방북기는 오스트레일리아인 의사 등 15명으로 구성된 시에프케이 방북단이 지난 5월17일~6월4일 그들이 지원하는 ‘평양 제2 간염 전문병원’을 찾아 개보수사업을 진행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북한이 대기근에 시달리던 1995년 대북지원을 시작한 이 단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비(B)형 간염 진단 및 치료 사업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이 사업과 관련해 방북했고, 올해 들어서도 지난 3월에 이어 5월 다시 평양과 개성을 찾았다. 시에프케이는 오는 9월 또다시 방북해 지원물자를 전달하는 등 사업을 점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미국 대북지원단체인 시에프케이의 지난 3월과 5월 방북이 유엔 대북제재 2270호와 미국의 독자적 제재안인 ‘행정명령 13722호’가 발효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국제공조를 통한 강력한 대북제재’를 이유로 인도적 대북지원단체의 북한 주민 접촉마저 철저하게 막고 있는 현재 한국 상황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한국의 54개 대북인도지원단체들이 모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회장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는 지난 6월28일 다시 정부에 대북인도지원을 위한 북한 주민 접촉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5월25일 통일부가 ‘북한 주민 접촉신고 수리’를 거부하고 있는 데 대한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질의서를 보냈던 때에 비해 비판의 강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통일부는 “현재는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제재에 집중할 때”라는 입장만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는 상태이다.

남한과 미국의 대북 인도지원단체들의 이런 엇갈린 상황은 오롯이 인도적 지원에 대한 두 나라 행정부의 철학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강력한 대북제재를 하는 가운데서도 인도적 대북지원의 문은 열어놓고 있는 데 반해, 박근혜 정부는 인도적 지원마저도 강력한 대북제재라는 틀에 함께 묶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월2일 유엔 대북제재안 2270호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채택되자, 13일 뒤인 3월15일 독자적 대북제재안인 ‘행정명령 13722호’를 발표했다. 이 행정명령은 북한의 국외 노동자 송출행위를 금지하고,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이나 기업·은행을 제재할 수 있도록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이 포함돼 있는 강력한 것이다. 남한 정부도 이에 앞서 지난 2월10일 개성공단 전면폐쇄를 선언하는 등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남한 정부는 이어 대북인도지원단체들에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스스로 철회하도록 종용하고 나서는 등 인도적 지원까지 행정력을 동원해 금지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행보는 달랐다. 미국 정부는 ‘행정명령 13722호’를 발표한 뒤 열흘이 채 안 된 지난 3월24일 9개의 ‘일반 허가’(제너럴 라이선스) 사항을 발표한다. 여기서 ‘일반 허가’란 ‘특별 허가’를 받지 않아도 대북지원 등이 가능한, ‘행정명령 13722호’의 예외조항들을 가리킨다. 즉 미국 정부는 강력한 대북제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북한에 물품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범위를 규정해둔 것이다.

가령 ‘일반 허가 제1호’는 “유엔의 북한 미션과 관련해서는 미국 내 물품 등을 북한에 보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 허가 제4호’는 가능한 비상업적 대북 송금에 대한 사항을 규정해놓았다.

미국 정부는 대북인도지원과 관련해서는 ‘일반 허가 제5호’에 규정해두었다. 이에 따르면 인도적 지원에 필요한 음식이나 영양분, 의약품, 장애인 지원 활동이나 환경 관련 활동 등은 대북제재 속에서도 북한에 지원이 가능한 물품이나 서비스로 규정돼 있다. 이와 함께 아동에 대한 교육활동이나 산모와 아이들에 대한 지원,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지원 등도 대북지원이 가능한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예외 규정이 포괄적인 만큼 미국 대북지원단체들은 유엔 제재나 미국의 독자제재 탓에 지금까지 해왔던 대북인도지원 활동이 전혀 방해받지 않는다고 한다. 대북 인도지원을 하고 있는 한 미국 엔지오 간부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정부의 대북제재가 인도적 지원활동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제재와 함께 인도지원에 대한 예외규정을 빠르게 발표하면서 민관 사이에 마찰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남한 정부는 “인도지원은 허용한다는 게 원칙”이라고만 밝힌 채 구체적인 허용범위 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당연히 정부와 대북지원단체 사이의 갈등과 불신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깊어져간다. 심지어 남한 정부는 ‘인도적 지원마저도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비판마저 듣게 된 상황이다.

똑같이 강경한 대북제재를 하면서도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과 미국 정부. 과연 어떤 태도가 대북제재의 정당성을 더 높일 수 있을까? 대답은 자못 자명해 보인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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