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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핵과 수해지원 연계, 인도적 지원 뿌리친 정부

등록 2016-09-19 19:40수정 2016-09-19 22:49

정부, 수해지원 사실상 거부

북한 5차 핵실험 강행 이유로
최악의 수해 지원 사실상 거부
‘인도지원은 제재대상 아니다’
박근혜 정부 원칙 스스로 파기

1984년 남한 수해 때 북 구호품
적십자회담·경제회담 여는 계기
“최소한 민간차원 지원은 터줘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함경북도 수해 지역에서 고무산청년역~무산역 구간 철길이 복구돼 평양시각으로 지난 17일 오후 5시 홍수피해 후 첫 열차가 무산역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이 구간은 총 28곳에 7만㎥ 이상의 토사물이 쏟아지는 등 피해가 극심했던 곳 중 하나다.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함경북도 수해 지역에서 고무산청년역~무산역 구간 철길이 복구돼 평양시각으로 지난 17일 오후 5시 홍수피해 후 첫 열차가 무산역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이 구간은 총 28곳에 7만㎥ 이상의 토사물이 쏟아지는 등 피해가 극심했던 곳 중 하나다.연합뉴스

북한 당국이 “해방 후 처음 보는 혹심한 대재앙”으로 규정한 함경북도 북부지역 수해 지원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요지부동이다. 북한 상주 각급 유엔 기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앞다퉈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지만, 정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을 이유로 ‘김정은 정권 책임론’을 거론하며 사실상 지원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는 인도적 지원은 제재 대상에서 배제하는 국제사회의 인권 원칙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기존 방침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남북관계 개선의 마중물이자, 분단 극복과 통일의 정서적 공감대 확산의 지렛대로 삼아온 역대 정부의 정책에서 배워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수해 지원에 대한 정부 방침을 묻는 질문에 “구호의 성격과 피해 상황에 대한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하며, 긴급구호의 필요성과 투명성, 북쪽의 요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다. 그간 정부 방침을 재확인한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 대변인은 “북쪽은 수해가 난 상황임에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며 “(수해 복구라는) 당면한 과업이 있음에도 민생과 관련 없는 부분에 비용과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북의 책임을 먼저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정권의 책임을 수해라는 재앙을 당한 북한 주민에게 묻는, 국제 인도주의 원칙의 기본도 모르는 반인권적 인식이다. 박근혜 정부가 ‘70년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 결의’라고 선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도 전문에서 “본 결의에 부과된 (제재) 조치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인도적 영향을 의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핵실험 제재와 대북 인도적 지원은 별개의 문제라는 명시적 선긋기다.

북한 수해 지원 여부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북쪽의 요청이 없다”는 말로 비켜 갔다. 이날 브리핑에서도 정 대변인은 “긴급 구호의 국제적 원칙은 해당 국가의 요청에 따르는 것이다. 해당 국가의 요청 없이는 지원을 하지 않는 게 국제적 관례”라고 말했다. ‘국제적 기준’과 ‘관례’는 뭘까? 1991년 12월19일 제78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인도적 긴급구호의 조정 강화’ 결의가 그것이다. 결의 1항은 “인도적 지원은 자연재해 등 긴급 상황에 처한 피해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규정한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국제적 기준’은 “인도적 지원은 피해 당사국의 동의와 요청에 따라 이뤄지는 게 원칙”이라고 규정한 3항이다. 하지만 이는 피해 당사국의 주권을 존중하려고 마련된 조항이지 지원 회피의 방패막이가 아니다. 되레 7항에선 “주변국은 인도적 지원 물품 통관을 포함해 피해 국가 지원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긴밀히 동참”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공식 요청 없이 인도적 지원을 한 선례는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4년 9월 수도권 물난리 때다. 그해 8월31일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서울에만 사흘 새 334.4㎜의 폭우가 내렸다. 당시 내무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사망자 86명과 10만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해 9월8일 북한의 조선적십자회는 전격적으로 “쌀 5만석, 천 50만m, 시멘트 10만t, 기타 의약품을 구호물자로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남쪽 당국의 공식 요청은 없었다. 체제 경쟁을 하던 시절이었다. 고심하던 전두환 정부는 엿새 만에 북쪽의 제의를 수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9월29일~10월4일 판문점·인천항·북평항을 통해 물품이 전달됐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를 계기로 적십자회담이 열리고 경제회담과 국회회담이 열렸다. 그 동력으로 1990년대부터 총리급 회담으로 남북대화가 격상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짚었다. 1985년 9월20~23일 분단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산가족 동시 고향 방문이 성사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정 전 장관은 “인도적 지원을 주고받은 게 남북대화를 푸는 좋은 계기가 된 사례가 많다. 정부는 입만 열면 인도주의와 인권을 말하지만, 민간 차원의 지원까지 막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2014년 3월) 드레스덴 선언 이후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인도적 지원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 게 명백한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 건 정부 스스로 밝힌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4일부터 시행된 북한인권법은 “국가는 북한 주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2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인권법에 인도적 지원이 명시돼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무조건 어떤 경우라도 하라는 건 아니다.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라고 답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핵실험과 박근혜 대통령의 지원 거부에 사이에 끼여 고통받는 건 북한 주민들뿐”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김진철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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