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이 ‘지적 욕구’ 떨어뜨린다
예비역이 미필보다 지식 추구태도 낮아
제대뒤 정신병리· 공격성 보일 개연성도
제대뒤 정신병리· 공격성 보일 개연성도
<한겨레>가 임상심리학연구소 ‘더 트리그룹 리서치클리닉’(대표 조용범)과 함께 군대가 한국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군대 생활 2년이 지적 욕구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의적 사고성향을 가늠하는 GPP-I(Gordon Personal Profile-Inventory) 검사 가운데 지식을 추구하는 태도와 지적 호기심을 재는 2개 척도가 이번 조사에 사용됐다.
지식을 추구하는 태도와 관련해서는 전투병 등 비행정병으로 복무한 집단의 평균점수가 3.83점으로 군대에 가지 않은 집단의 평균점수인 4.69점보다 훨씬 낮았다.(유의수준 0.012) 행정병 집단의 평균점수는 4.50점으로 두 집단 사이에 놓이는 경향을 보였다.
이 척도에서 점수가 높게 나온다는 것은 철학적인 토론과 이성적 추론을 즐기고,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는 욕구가 강하라는 것을 뜻한다.
지적 호기심과 관련해서는 행정병으로 복무한 집단과 전투병 등 비행정병으로 복무한 집단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다. 행정병 출신 집단의 평균점수는 4.35점인 반면, 비행정병 출신 집단의 평균점수는 3.91점에 머물렀다.(유의수준 0.047) 군대 경험 말고도 현재 재학 중인 학교나 가정형편, 나이 등이 지적 욕구나 호기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봤지만, 이들 요인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병리를 측정하기 위해 죄책감, 공포·불안증, 우울증, 강박증, 망상증 등을 진단하는 간이증상진단척도(BSI)를 사용했다. 조사결과 군대 생활 자체가 정신병리를 높이거나 낮추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언어적 공격성 등을 측정하는 AQ-K 조사에서도 군대가 개인의 공격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 가운데 BSI나 AQ-K 점수가 높게 나타난 사람들이 군 생활을 하면서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심리척도와 자기보고형 설문을 회귀분석했더니, 제대 이후에까지 정신병리와 공격성을 높일 가능성이 높은 부정적 병영문화 11가지가 도출됐다.
△자신과 무관한 일로 질책을 받는 경우 등에 느끼는 억울한 감정 △서로 무시하는 환경 △자신의 뜻이 무시되고 상급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환경 △개인에 대해 낙인을 찍는 경우 △집단적으로 개인을 ‘고문관’ 등으로 매도하는 분위기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하는 경우 △화나 감정격변을 일으키는 상황 △가혹행위를 교사하는 경우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군대의 규율·질서 △애국심의 강요 △충격적인 경험 등이 그러한 요인이다.
이들 11가지 요인은 제대 이후에 정신증(설명력 42%), 우울증(40%), 적대적 태도(39%), 정서적 고통(37%), 불안(35%), 망상적 편집증(30%), 대인관계 민감성(30%) 등 정신병리 성향과 신체적 공격성(26%), 언어적 공격성(23%), 분노표출(24%) 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설명력이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특정한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 것이다. 사회과학 연구에서는 9% 이상의 설명력을 가지는 요인을 상당히 중요한 요인으로 본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더 트리그룹의 조용범 대표는 “이번에 도출된 11가지 요인은 군 사고자나 부적응자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은 것들로 군이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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