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집착하며 ‘호들갑’ 떤 외교부·국방부 원인 제공
<한겨레>를 비롯한 국내 언론 대부분이 21일 ‘한국과 미국이 미군 전략무기를 한국에 상시 배치하기로 합의했다’고 오보를 냈다. 이런 대량 오보 사태는 이례적인 일이다. 국방부의 보여주기식 성과 부풀리기가 낳은 사고라는 지적이다.
애초 발단은 19일(현지시각)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었다. 윤 장관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2+2 회의’(외교·국방장관 합동회의)를 마친 뒤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 문제가 (다음날로 예정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추가 질의에 “제가 너무 앞서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국방부로 공을 넘겼다.
그러자 기자들은 국방부에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의제에 대한 사전 설명을 요청했고, 이에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따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에 대한 방안을 설명했다. 이 설명에 근거해 대부분의 기자들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한국시각 21일 새벽 0시15분 종료 예정) 이전에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 합의’ 기사를 송고했다. 신문 제작 시스템상, 회의가 끝나는 시점은 기사 원고 마감시간 이후이기 때문에 사전에 기사를 송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끝나고 뚜껑을 열자 결과는 대량 오보사태였다.
이 당국자는 기자들이 “모든 언론이 거짓말한 꼴이 됐다”고 항의하자, “한·미가 전략자산 상시 배치에 합의했다고 하지는 않았다. ‘검토’하기로 합의한 것이다”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은 진정성이 의심된다. 당시 뉴스 공급사인 <연합뉴스>가 한·미 연례안보협의회가 열리기 5시간쯤 전인 20일 오후 5시(한국시각) ‘전략자산 상시 배치 합의’를 보도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국방부가 이 기사에 대해 정정을 요청했다면 기사 내용을 바로잡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국방부가 ‘전략자산 상시 배치’라는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다 사실상 오보를 유도하거나 적어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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