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권인숙 명지대 교수(여성학) ‘대한민국은 군대다’ 저자, 김성전 예비역 중령 (가칭)평화재향군인회 사무처장, 조용범 박사(임상심리학) 더 트리그룹 리서치클리닉 대표, 정곤양 대령 국방부 인사근무과장.
④ 전문가 좌담
권인숙 “군기 때문에 인권침해 안돼…성희롱 ‘왜’ 안되는지 이해시켜야”
김성전 “의식변화 과정 정밀감정 필요…개인능력 존중·병사복지 향상을”
조용범 “조직에 순응 ‘단지 귀찮아서’…지적욕구 저하는 국가적 손해”
정곤양 “제대뒤 원만해지고 EQ 높아져…민간협력으로 문제 풀 것” 사회=군 입대가 한국 남자, 나아가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이번 연구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번 조사의 의미부터 얘기해보자. 조용범=이번 조사에서 군대가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든다는 결론이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통일에 대한 태도, 신자유주의 등에 대한 태도 등 이념적인 부분에서는 군대를 다녀온 사람과 안 다녀온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생활 태도의 보수성, 즉 현실 조직에 대한 순응성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높게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조직을 위해 이타적으로 자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귀찮기 때문에 조직에 순응하는 메커니즘이 군 전역자들에게서 발견됐다. 권인숙=여성학 강의를 할 때 복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알아서 기고, 튀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태도를 군에서 익혔다고 한다. 또 복학생들은 확실히 아래 학년이나 미필자, 여성에 대해서 뭔가 권위를 세우려고 하고, 위계를 잡으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아랫사람한테 군대가기 전보다 훨씬 비민주적으로 대하는 것 같다는 말도 한다. 김성전=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병사들을 보내기 전에 파병군인 6천명을 대상으로 인성검사와 심리테스트를 했다. 이들이 돌아왔을 때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조사한다. 우리도 더욱 체계적으로 군대문화가 군인들의 의식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 정밀 감정할 필요가 있다.
정곤양=가정교육, 학교교육 다 받아서 완성된 인격체가 군에 들어오기 때문에 군대에서 사람이 크게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이 많든 공부를 잘 하든 군대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고, 잘난 사람도 있다는 것을 군대에서 보고 마음이 순화된다. 모난 성격이 둥글둥글해져서 감성지수(EQ)가 높아져서 나온다. 또 마마보이들이 군대 갔다 오면 강인해진다. 김=정 대령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간부들이 군대 가면 사람 된다, 철이 든다는 전제 하에서 병사들을 바라보고 군대를 끌어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간부와 병사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병사들을 바라볼 때 눈높이를 직업군인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병사들 눈으로 봐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으로 평가받는 독일은 모든 장교, 부사관들이 병사 생활을 거친다. 지휘관이 평소 병사들을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면 군기가 빠져보이지만 막상 전쟁났을 때 이 부대가 잘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군에서는 겉으로 군기가 잘 든 부대 지휘관이 진급을 한다. 그러니까 병사들한테 군기를 요구하고 쓸데없는 환경미화를 요구한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휘관의 진급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군기를 강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김=우리 군이 지금 굉장히 많이 바뀌어 나가고 있지만, 간부들이 그동안 일제의 잔재인 낡은 군대문화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권=많은 지휘관들이 군기와 인권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병사를 전쟁을 위한 부속물로만이 아니라 병장과 이병이 똑같은 인격과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 속에서 합리적인 지휘체계와 병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군기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군대 안의 가혹행위 사건을 보면 위계질서의 위에 있는 사람이 언제든지 아랫사람의 인격권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관점이 드러난다. 훌륭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기존 지휘복종 관계의 관성이 유지돼야 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사회=우리 군, 특히 병영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또 있다면? 조=병사들은 전역하면 사회에 나와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인적자원이다. 평생 군인으로 살 사람들이 아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전역한 뒤 공부하면서 2년의 공백기에 대해 불평한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수학자나 과학자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 군대로 인한 2년의 공백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지적 욕구가 떨어져서 나온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해가 될 수 있다. 김=군대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을 병사들한테 요구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전쟁은 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특히 전쟁과 평상시를 구별해야 한다. 선진군대일수록 훈련에서 절대 사람이 죽게 하지 않는데, 우리는 훈련을 할 때에도 전쟁처럼 목숨을 걸고 실전처럼 하라는 등의 말을 한다. 훈련능력이 부족하면 천천히 할 수도 있는 것인데 ‘넌 군인이니까 이 정도까지 해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개인의 능력이 철저히 무시된다. 정=5년 전만 해도 병사들을 종처럼 생각하는 지휘관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적인 심부름이 전혀 없다. 지금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정말 자식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 김=전방에서 인권위원회와 함께 병사인권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하면서 나도 깜짝 놀랐다. 최근 2~3년 사이에 군대에서 구타·가혹행위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사회=가혹행위 척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시대, 신세대에 맞는 발전적인 군대문화에 대해 얘기해보자. 김=군은 전력증강을 위해 병사들의 복지 향상을 미루거나 단계적으로 추진하는데 이것은 잘못됐다. 전쟁 징후가 있을 때에는 전력증강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전쟁징후가 없다면 복지가 우선돼야 한다. 병영문화의 개선을 위해 병력 감축 등 국방개혁을 더욱 과감하게 실시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정=국방부가 마련한 이번 병영문화 개선안에는 중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먼저 인권 개념을 도입하고, 병사들의 인권보호를 법으로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개방이다. 병사들에게 컴퓨터 등을 통해 외부세계와 통하게 개방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율이다. 일과가 끝나면 밤 12시까지 멋대로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아까 학습 공백을 지적했는데 공부하다 온 대학생들을 위해 군대 안에서 공부를 하고 학점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하기로 했다. 그리고 군대문화는 장군부터 변해야 바뀐다. 그래서 장군들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장군부터 병사들을 인격체로 대우하고, 군에서 하는 일의 당위성을 병사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하는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권=그렇다. 특히 지휘관의 성의식이 병사들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 군은 지휘관의 성의식을 바꾸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여성문제와 관련해서는 간부들을 대상으로 성인지력 교육을 시키고 있다. 성매매에 관한 교육도 전군에서 하고 있다. 권=과거 군에서 사용한 성희롱 예방 영상물을 보면, 성희롱의 유형분류는 잘 돼 있는데 왜 성희롱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부분이 없다. 지휘관들도 사회의 분위기가 성희롱이나 성매매를 하면 문제가 되니까 군기라는 관점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지 성인지적 관점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회=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교육이 아니라 사관학교나 훈련소 같은 데서 인권교육, 성 교육 같은 것을 정규교육으로 구성하는 것은 어떤가. 권=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도 90년대 초반에야 성폭력 문제가 이슈화됐다. 이후 성폭력과 관련한 각종 지침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성매매가 남아 있고, 굉장히 남성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에 관련한 의식은 절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훨씬 더 진지하게 변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김=지휘관들이 스스로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느꼈다. 군대는 경성조직이기 때문에 위가 바뀌면 아래도 바뀌기 쉽다. 아직도 부대나 병과에 따라 편차는 있는 것 같은데, 전군으로 변화가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정=성 의식 교육을 위해 예산도 확보했고, 여성부와 전문 시민단체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지자체의 협조도 많이 받고 있다. 군에서 계속 대형사고가 일어나 국민들에게 염려를 끼치는 것에 대해 군에 있는 사람으로서 곤혹스럽고 책임을 통감한다.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하지만 그동안 군의 노력으로 사고를 크게 감소시킨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 앞으로 인권, 개방, 자율, 소통, 자기계발 등의 문제들에 대해 민간과 잘 협력해서 추진하겠다. 국민들은 애정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끝> 정리 유신재 기자 ohara@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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