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아닌 외교를” 미국 시민들이 9일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전쟁이 아닌 외교를”, “폭탄이 아닌 대화를”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북한과의 평화적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의 자극적인 ‘독설 전쟁’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극도로 긴장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북·미가 아직은 ‘말 대 말’ 공세에 그치고 있지만, 자칫 우발적 충돌이나 순간적 오판에 의한 ‘행동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충돌이 현실화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민의 몫이 되지만, 현재로선 문재인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일단 북-미 간 ‘브레이크 없는 폭주’를 멈추게 하기 위해선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전쟁 반대’ 의사를 더욱 분명히 하는 동시에, ‘8월 위기’의 정점이 될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필요 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락겸 북한군 전략군사령관이 9일 성명을 내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12’형 4발의 동시 발사로 진행하는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 사령관은 발표문에서 화성-12형의 구체적인 사거리와 비행시간을 언급하며 “괌도 주변 30~40㎞”를 탄착점으로 명시했다. 김 사령관은 또 “전략군은 8월 중순까지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최종 완성하여 공화국 핵 무력의 총사령관(김정은) 동지께 보고드리고 발사대기 태세에서 명령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8일)에 ‘괌 포위사격’ 성명으로 응수했던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시사에 이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북한 정권 종말’ 경고가 나오자, 그에 맞춰 위협의 강도를 높이며 맞서는 모양새다. 김 사령관이 성명을 내기 몇시간 앞서 매티스 장관은 9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북한은 정권 종말과 자국민 파멸을 야기할 어떤 행동도 고려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북한 정권의 (군사)행동은 우리의 행동에 의해 극도로 압도될 것이고, 군비 경쟁이나 북한이 시작하는 충돌에서도 패배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미국 <엔비시>(NBC) 방송은 복수의 전·현직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명령을 내리면 괌에 배치된 B-1B 장거리 폭격기를 띄워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선제타격하는 작전 계획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북·미가 벼랑 끝에서 아슬아슬한 대치를 이어가는 것을 두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북과 북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하려는 미국이 현시점을 각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9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극도로 우려하고 있고, (북-미 간에) 대결적 레토릭(언사)이 증대되고 있는 데 대해 당혹스러워(troubled)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북·미 양쪽에 “발언과 행동 자제”를 촉구했으며,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도 “북한 주재 대사관을 통해 북한 당국과 접촉하고 있다”며 북-미 대화를 촉구했다.
오는 21일 시작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전후해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다. 매해 북한의 기습 남침을 가정해 벌여온 이 시뮬레이션 훈련 기간에 한·미가 전략무기를 동원해 북한에 무력시위를 할 경우 북한이 맞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4월 위기 때는 북한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면 정말 (충돌 상황이) 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정부가 이 훈련이 정례적인 방어 훈련이라는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훈련이 강화된 모습을 보여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주최 강연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제2의 한반도 전쟁으로 이어지는 군사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근원적인 조언도 나온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새 정부 대북정책과 한반도 미래’ 토론회에서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를 연계시키지 말고 분리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북핵 문제의 본질이 적대관계인 만큼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남-북-미-중 간의 평화회담을 조속히 개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긴장완화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정의용 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 회의를 열고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박 대변인은 “상임위는 특히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 고조나 무력충돌은 어느 나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감안해 미국 등 주요국들과 협력하에 한반도에서의 긴장 해소와 평화 관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기로 했다”며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현 긴장상황 완화 및 근본적 해소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적극 전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지은 김규원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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