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괌 포위사격’ 위협은 불과 며칠 만에 북-미간 가시돋친 설전에서 미-중 정상간 핵심 의제로까지 비화했다.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번 사태로 누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도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우선 미국을 상대로 군사 도박을 시도함으로써 단숨에 세계 최강 군사대국과 맞서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북한은 또 한반도가 북-미간 양자의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장이라는 여론을 실감나게 구성해, 이를 핵과 미사일 개발을 위한 명분 쌓기로 활용하는 기회도 잡았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장은 “북한의 이른바 ‘괌 포위사격’ 위협으로 전세계가 한반도를 주시하면서 북으로선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는 등 전략적 성과를 거둔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 남북간 불안한 안보상황은 한국 경제에 종종 극적인 방식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곤 했다. 통상 ‘코리아 리스크’라고 한다. 북한은 이번에 “괌 타격” 엄포 만으로 한국 증시뿐 아니라 미국 증시에까지 코리아 리스크를 퍼뜨렸다. 미국으로선 이제 북-미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경제 측면에서도 중요해진 셈이 됐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잇딴 자극적인 용어를 동원해 북한을 상대했으나 불안한 지도자라는 인식만 더 깊게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 “군사적 해법이 준비돼 있고 장전이 완료됐다”고 하는 등 발언 수위를 한껏 높였다. 그러나 미국 안팎에서 “즉흥 발언으로 사태만 악화시킨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화염과 분노’ 발언의 경우 국무부는 논란이 커지자 “대북 압박 차원의 발언”이라고 수위를 조절하는 등 뒷수습까지 해야 했다.
중국은 이번 사태로 다시 한번 동북아 무대의 핵심 행위자로 위상을 드러냈다. 12일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간 통화는 미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상의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임을 확인시켰다. 시 주석은 이날 통화에서 ‘북한의 도발 중단’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핵 문제의 해결은 결국 대화와 담판”이라고 훈수까지 한 수 뒀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사태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의미있는 조처가 별로 없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북-미간 군사 대결구도가 선명해지자, 남한의 존재감이 급속히 쪼그라든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11일 통화해 대응 방안을 협의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늘 한반도 주변 정세가 대결과 갈등 구도로 전개되면 남한의 위상은 축소됐다. 남한의 존재감은 대화와 타협 국면에서 북한과 미국, 중국 사이를 오가며 중재할 때 부각됐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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