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훈 중위와 아버지 김척. <한겨레> 자료사진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경계초소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숨진 김훈 중위가 19년 만에 순직 인정을 받았지만, 억울한 사연이 풀리지 않은 사망 군인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이들 가운데는 최초 군 수사 결과에서 ‘자살’ 판정을 받았다가 재조사 결과 ‘미상’으로 바뀌고, 진상규명 불능 원인이 ‘자료 미비’인 경우가 많았다. 군 수사기관이 초동 수사에 실패했거나, 사고를 덮기 위해 미리 사망 원인을 정해놓고 조사를 벌이는 등 부실 수사가 잦았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1일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진상규명 불능’ 사망 군인이 모두 47명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 중 8명에 대해 심사를 벌인 결과 김훈 중위를 비롯해 7명에게 순직 결정을 내렸다. 1명은 순직 요청이 기각된 상태다. 아직까지 심사조차 받지 못한 사망 군인은 39명에 이른다.
고 채희상 일병도 그 가운데 하나다. 채 일병은 2002년 11월20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휴가를 마친 아들을 직접 차에 태워 부대 바로 앞까지 데려다줬던 채 일병 부모는 속이 터졌다. 군 조사당국은 채 일병이 스스로 사고 현장에 가서 몸을 던져 추락사했다고 판정했지만, 2006년 출범해 4년 동안 활동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해체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는 채 일병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의문사위가 참고한 군의 수사 자료엔 채 일병이 혼자서 사고 장소로 이동해 직접 아파트로 올라가 뛰어내렸는지 등을 증명해줄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이나 목격자 증언 등이 드러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문사위는 당시 부대 내 상사가 채 일병뿐 아니라 다른 대원들에게도 불법적인 얼차려, 구타 등 가혹 행위를 한 사실이 있다며 채 일병도 구타나 가혹 행위를 당한 것이 아닌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한 바 있다. 최근 판례를 보면 현장 수사·보존 등 초동 수사를 부실하게 한 경우 배상 등 책임을 국가가 지도록 하고, 상급자의 언어폭력이나 구타 등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에 이른 경우 순직을 인정해주는 추세가 늘고 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외부에 있다면, 당국이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지원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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