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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다음주의 질문] 문재인 정부가 ‘공미증’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등록 2017-09-29 20:00수정 2017-09-30 09:50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열병하고 있다. 국군의 날 행사가 해군기지에서 열리는 것은 창군 이후 처음이다. 이번 행사에선 우리 군의 북한 타격용 무기들을 대거 공개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열병하고 있다. 국군의 날 행사가 해군기지에서 열리는 것은 창군 이후 처음이다. 이번 행사에선 우리 군의 북한 타격용 무기들을 대거 공개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국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북한 공역에서 벌인 작전에서 한국이 ‘소외’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작전에 한국 전투기들이 동행하지 않은 상황을 놓고, 미국이 한국을 무시했다거나 두 나라 사이에 이견이 심각하다는 게 비판 요지다. 흔히 말하는 ‘코리아 패싱’이나 ‘한국 왕따론’이다.

한마디로 가당치 않은 언설들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기에서 외려 한국 정부의 입지를 줄이고 부정하는 말들이다. 결론만 놓고 본다면, 미국은 이 작전에 한국의 ‘들러리성’ 참가를 요청했으나 한국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이 작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핵과 미사일 위기를 놓고 북한과 미국이 벌이는 대결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한국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최소한의 조처로 평가하는 게 옳다.

먼저 상황을 복기해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위기 관리를 강조하는 유엔 총회 연설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즈음인 지난 23일, 미국은 괌에서 출격한 B-1B를 동원해 한반도의 북방한계선(NLL) 북쪽인 북한의 강원도 원산 동쪽 공역을 비행했다. B-1B 편대는 함흥·신포 동쪽, 즉 북방한계선 150㎞ 북쪽 공해상까지 진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핵실험장인 풍계리에서 남쪽으로 130㎞ 떨어진 곳이다.

작전은 당장 뒷말을 낳았다. 한쪽에서는 미국의 전폭기가 한반도에서 작전할 때는 통상적으로 동행하던 한국 전투기가 없던 상황을 놓고 ‘한국이 소외됐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미국이 작전에 임박해서야 통보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한반도에서 대북 작전을 수행하는 의지와 능력을 보였다’는 해석으로, 곧장 미국의 한국 무시나 왕따론으로 이어졌다.

다른 쪽에서는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한반도 위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직후 북한에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적당한가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국 정부가 이를 용인한 것은 북핵 해결에서 미국에 끌려다니는 상황을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전자의 비판에 더 반응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다음날인 24일 “한-미 간 충분히 사전 협의가 이뤄졌고, 긴밀한 공조하에서 작전이 수행됐다”며 “북방한계선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한국군은 참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전투기는 북방한계선까지만 동행하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군이 북한 공역에서 수행한 ‘죽음의 백조’ 비행 작전에 대해 두 나라 사이에는 ‘이견’이 있었다. 미국이 한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했는지 여부를 떠나, 한국은 이 작전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다. 한반도의 위기를 격화시키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조처를 취했다. 더구나 우리는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입을 줄곧 비판해왔던 터다. 이는 외교부의 고위 인사가 26일 “우리로선 거기에 동행하는 부분에 있어선 너무 지나치게 자극적일 수 있기 때문에 빠졌다”고 말한 데서 잘 드러난다. 생각해보자. 그 작전 자체가 필요하다 해도, 한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한반도 위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던 즈음에 작전에 나서는 게 타당한 것인지. 이 외교부 인사의 말을 놓고, 한-미 동맹에 이견이 생겼다고 호들갑을 떠는 주장도 터져나왔다. 청와대 쪽은 그가 “내용을 정확히 몰랐던 데서 기인한다”고 해명했다. ‘쓸데없는’ 해명이다.

일반적으로 나라들 사이에, 한국과 미국 사이에도 이견이 있는 건 당연하다. 이견을 놓고 타협하고, 서로의 입장을 최대한 관철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한-미 사이에 이견이 생기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고, 마치 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보는 시각이 난무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와 관련한 모든 대처에 대해 일각에서 나오는 첫 질문은 한-미 사이에 이견이 없느냐는 것이다. 가히 미국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는 ‘공미증’이라 할 만하다. 사람들은 말끝마다 ‘한-미 사이에 이견이 없냐’, ‘미국이 수용했냐’를 따지려 든다.

이런 언설에 문재인 정부는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분명 한-미 공조를 강조할 필요가 있지만, 이견이 있다는 점도 다른 통로로 밝히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위기 관리를 위한 우리의 입장을 말하고 견지하는 데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공미증’이 전염되면 결국엔 미국 앞에서 마냥 엎드리는 ‘기미(祈美)증’이 될 수 있다.

정의길 국제에디터석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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