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략무기인 B-1B ‘랜서’ 폭격기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가 열리는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일촉즉발의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는 한반도 하늘을 지배하는 전략자산은 단연 미 공군의 B-1B 초음속 폭격기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 군사 위협이 커질 때마다 한반도를 찾아 억제력을 과시했다.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10여차례나 된다.
특히 지난달 23일 밤 미 공군의 B-1B 출격은 눈길을 끌었다.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북까지 올라가 무력시위를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비행 지역은 북한의 ‘군사경계선’ 인근이어서, 무력충돌 위험이 잠재된 곳이었다. 북한은 1977년 8월 “영해의 기산선으로부터 50해리까지”를 동해의 군사경계선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50해리면 미터법으로 92.6㎞다. 그러나 북한은 해안선이 아닌 만구폐쇄선을 기산선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구폐쇄선은 북쪽의 북·러 해안 경계선과 남쪽의 북방한계선 지점을 잇는 직선기선이다. 따라서 원산 앞바다의 경우 군사경계선은 해안선에서 대략 100해리(185.2㎞)쯤 된다.
미군의 B-1B가 북한의 군사경계선 안쪽까지 비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미군은 북한의 영공(12해리)에 속하지 않는 공역을 비행했다고 밝힐 뿐 정확한 비행 행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원산 앞바다 300~350㎞까지 비행했다”는 몇몇 언론 보도가 맞다면, 미군도 이 지역 비행의 민감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적당히 거리를 뒀던 것으로 해석된다.
B-1B는 한반도 작전에 여러모로 유리하다. 미국의 3대 장거리 폭격기 B-52H, B-1B, B-2 가운데 가장 많은 폭장력을 자랑한다. 또 유일한 초음속 폭격기로 가장 빠르다.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할 경우 2시간 반이면 한반도 상공에 도착한다. 인천-괌 민항기는 4시간 반 걸린다. 실상 B-1B의 한반도 출격은 지난해 8월 괌 배치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 대북 무력시위의 단골손님은 B-52H였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직후 한반도에 날아온 것도 B-52H였다.
B-1B는 사연 많은 폭격기다. 1960년대 소련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전략폭격기 구상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저공침투 능력을 갖춘 초음속 폭격기 B-1A가 개발돼, 1974년 시제기 4대가 제작됐다. 그러나 이후 소련의 방공 능력이 향상돼 B-1A의 저공침투 성공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미국에선 스텔스 폭격기 B-2 개발이 비밀리에 추진되면서 B-1A 양산계획은 취소됐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는 1980년대 초 B-2 개발 완료 때까지 전력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다시 이 계획을 되살렸다. 대신 레이더 반사면적을 크게 줄였고 최고속도는 마하 2.22에서 마하 1.25로 줄이는 등 일부 설계를 변경해 B-1B가 됐다.
국내 언론에선 B-1B가 ‘죽음의 백조’로 소개되곤 한다. 그러나 이는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애칭이다. 외국에선 통상 B-1(one)을 그대로 읽어 ‘본’(Bone·뼈)이라고 부르고, 공식 별칭은 ‘랜서’(Lancer·창기병)다. B-1B는 애초 B-52H나 B-2처럼 핵무장 폭격기로 설계됐다. 그러나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핵무장 능력이 제거돼, 지금은 재래식 무기만 운용한다. 무장 능력은 B-52H의 두 배 가까이 된다. 내부창에 34t의 무기를 실을 수 있고, 외부에도 추가로 23t을 달 수 있다. 합동직격탄(JDAM)이나 공대지 순항미사일 재즘(JASSM) 같은 정밀 유도무기도 운용할 수 있다. 군 당국자는 “B-1B는 핵 공격으로 오해받지 않으면서 효과적인 무력시위를 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라고 평가했다.
B-1B의 출격은 대북 억제력 과시 목적이지만, 거꾸로 긴장 고조의 구실이 되기도 한다. 북한 인민군 전략군 대변인이 8월8일 ‘괌 포위사격’을 위협한 것도 애초엔 B-1B의 발진기지에 대한 응징 차원이었다. 한-미 간에는 앞으로 B-1B를 비롯한 미군 전략무기를 더 자주 한반도에 전개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과연 이런 전략무기의 추가 전개가 한반도 정세에 어떤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박병수 정치에디터석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