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인도적 지원 시급하다더니…
통일부, 보수여론 의식해 차일피일
통일부, 보수여론 의식해 차일피일
박근혜 정부 때 중단됐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정부가 두달째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애초 정부가 지난 9월 대북 지원 재개 방침을 발표하면서 어린이·여성 등 북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했던 터라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지원 재개 방침을 처음 밝힌 것은 지난 9월14일이다. 당시 통일부 당국자는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기구의 요청에 따라 모두 8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9월3일)에도 “인도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구분해 추진한다”는 원칙을 지킨 셈이다.
실제 이튿날인 9월15일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시험 발사했음에도, 정부는 1주일 뒤인 같은 달 21일 예정대로 교추협을 열어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지원 재개 방침을 확정했다. 당시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정부는 북한 주민, 특히 영유아·임산부 등 취약계층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해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방침을 일관되게 밝혀왔다”며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지원은 분리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대북 인도지원 사업은 북한 탁아시설·소아병원·임산부 등을 대상으로 한 세계식량계획의 영양지원사업(450만 달러)과 어린이·임산부를 대상으로 유니세프가 진행하고 있는 백신 접종, 설사·호흡기감염병 등에 대한 필수의약품 지원, 영양실조 치료제 사업(350만 달러) 등이다. 북한에 상주하는 6개 유엔 기구가 지난 3월 펴낸 올해 사업계획서를 보면, 북한 주민 2490만명 가운데 식량 부족과 영양 결핍 등으로 지원이 필요한 인구는 약 1800만명에 이른다. 또 1천명당 25명(남한 3명)에 이르는 북한의 5살 이하 어린이 사망 원인 가운데 22%가 의약품만 있으면 치료가 가능한 설사와 급성호흡기질환이다. 정부가 대북 인도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한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진하기로 했다”는 설명만 되풀이하며, 두달째 실제 지원을 미루고 있다. 같은 기간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멈춘 상태임에도, 대북 인도지원에 부정적인 보수 여론을 의식한 탓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19일에도 “국제기구와 실무 협의를 지속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절한 시점에 공여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지난 9일 펴낸 ‘인도주의 기금 모금 현황’ 최신 자료를 보면, 올해 유엔 각급 기관의 대북 인도지원 활동에 필요한 자금은 1억1350만 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지난 10월 말까지 실제 모금된 자금은 전체의 29.9%인 3390만 달러에 그쳤다. 유엔 쪽은 자료에서 “극심한 자금 부족으로 취약계층 1300만명에 대한 지원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다”며 “일부 중요한 인도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인도적 지원은 유엔 제재에 해당하지 않고, 미국도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주저할 이유도 없고, 최소한 원칙을 정하고 집행을 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인환 김지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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