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 운동 때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전일방송> 직원으로 일했던 시민이 지난해 2월23일 이 빌딩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을 살펴보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헬기 사격 때문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한 총탄 자국은 전일방송이 입주했던 이 건물 최상층에 남아 있다.광주/연합뉴스
국방부 5·18 민주화운동 특별조사위(위원장 이건리 변호사·이하 특조위)는 7일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군, 정보기관 등에 남아있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이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왜곡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우선,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5년 6월엔 국가안전기획부(당시 부장 장세동)가 주도한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와 ‘실무위원회’(일명 80위원회)가 구성됐다. 대학생들이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에 나서는 등 5·18 진상규명 요구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에는 청와대, 안기부, 법무부, 국방부, 문공부, 육군본부, 보안사, 치안본부 등 핵심 기관들은 물론 집권 민주정의당까지 참여했고, 구체적인 실무는 안기부 2국장이 위원장을 맡은 ‘80위원회’가 주도했다. 특조위는 “80위원회는 모든 자료를 수집·종합·검토해 소위 ‘광주사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특조위 조사에서 당시 발간됐을 백서가 확인되진 않았다”고 밝혔다.
1988년 5월에는 노태우 정부의 국방부가 국회의 5·18 청문회에 대비해 ‘국회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국방부 차관)를 구성했다. 또 국방부 산하 각 기관이 참여한 실무위원회로 511연구위원회와 511 상설대책위원회를 두었고, 보안사는 별도로 511분석반을 편성했다. 특조위는 “511연구위는 군 자료 수집·정리에 그치지 않고 군에 불리한 자료를 군의 시각에 맞게 은폐·왜곡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에 따라 계엄군으로 출동했던 특전사의 전투상보와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장병들의 체험수기 등이 왜곡되는 등 특조위가 ‘가짜와의 전쟁’을 치르는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특조위 관계자는 “지난해 9월 특조위 출범 이후 62만쪽에 이르는 자료를 수집·분석했고 광주에 출동했던 190개 대대급 이상 군 부대 및 관련 기관을 방문조사했지만, 과거 정권의 조직적인 자료 멸실과 은폐, 왜곡으로 헬기 사격이나 전투기 출격 대기 등을 직접 입증할 만한 군 관련 자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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