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티브이>가 8일 오후 녹화 중계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가 등장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8일 오전 건군절 70돌 열병식(군사 퍼레이드)을 진행했다. 북한이 지난달 건군절을 애초 4월25일에서 2월8일로 변경한 뒤 첫 건군절 행사다. 그러나 지난해에 비해 행사가 축소됐다. 올림픽 이후를 내다본 조심스러운 행보로 해석된다.
북한은 건군절 70돌을 맞아 이날 오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병식을 진행한 뒤, 이를 오후 5시30분(평양시각 5시)부터 <조선중앙티브이>를 통해 녹화중계했다. 실제 열병식은 11시30분(평양시각 11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군 당국자가 전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일(9일) 하루 전날 군사력을 과시하는 행사를 하는 것은 “군사적 도발”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열병식을 강행한 것이다.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 전차와 방사포, 자주포 등 재래식 무기와 함께 화성-14형, 화성-15형 등 장거리미사일도 선보였다. 그러나 눈에 띄는 새로운 전략 무기는 없었다.
검은색 중절모와 긴 코트 차림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부인 리설주씨와 함께 위병대를 사열한 뒤 주석단으로 이동해 열병식을 지켜봤다. 리설주씨의 열병식 참관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침략자들이 신성한 우리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0.001㎜도 침해하거나 희롱하려 들지 못하게 하여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핵을 거론하거나 남한이나 미국에 대한 공격을 언급하진 않았다.
이날 행사에선 총정치국장에 새로 임명된 것으로 알려진 김정각 차수가 주석단에서 김정은 위원장 오른쪽 옆에 자리를 잡아 눈길을 끌었다. 대신 얼마 전 실각한 것으로 알려진 황병서 전 총정치국장은 보이지 않았다. 9일 고위급 대표단으로 평창을 찾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북한은 애초 공언한 대로 열병식을 강행하면서도 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등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북한은 이번 열병식 행사를 대략 1시간30~40분 동안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열병식이 오전 10시5분부터 12시56분까지 2시간51분 진행됐던 것에 비해 1시간 이상 줄어든 것이다. 군 당국자는 “작년에 비해 내용 구성이 축소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또 이번 건군절 열병식을 생중계하지 않고 오후에 녹화방송했다. 지난해 4월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 실황을 생중계한 것과 비교된다. 군 당국자는 “북한이 열병식을 생중계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와 달리 이번 열병식엔 외신 기자들 초청도 없었다.
이번 열병식은 건군절 행사이고 지난해 열병식은 4월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105돌을 기념한 것이어서, 두 열병식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번 건군절은 1948년 2월8일 창설된 인민군의 70돌 생일이다. 행사 축소는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맞이하는 기념일을 성대하게 치르는 북한의 관례와 어긋난다. 이런 행보는 논란 확산을 막으려는 절제된 행동으로 읽힌다.
북한의 이런 ‘로 키’(억제된) 행보는 평창올림픽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이웃집 잔치에 재 뿌린다는 인상을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국내용 행사로 축소한 것 같다”며 “이번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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