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정희영 디자이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5월에 만나겠다고 밝힘에 따라, 회담 장소와 형식이 어떻게 될 것이냐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 장소와 형식에 따라서 회담의 내용 및 그 성과의 수준을 미리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회담 장소는 회담을 둘러싼 양쪽의 의지 및 주도권뿐만 아니라 양국 관계의 진척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이번 회담은 김정은이 먼저 트럼프에 제안한 형식이다. 이때문에 회담을 제안한 쪽의 수도인 평양이 회담 장소로 먼저 부각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평양 방문을 고려한 선례가 있다. 당시 메들리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 관계가 급속히 진전되자,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한때 가시화된 적이 있었다. 클린턴의 평양 방문은 임기말인데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격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부시의 반대로 무산됐다. 클린턴은 나중에 자신의 평양 방문이 무산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정은과 북한 입장에서도 트럼프의 평양 방문은 최상의 카드이다. 세계 최대 강대국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위상을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국내 인민들에게 드러내는 최대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평양까지 방문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두 정상의 전격적인 회동 발표가 준비되지 않았고,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평양까지 방문해 김정은과 회담하는 것은 외교적 부담까지 질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도 당연히 회담 장소로 거론된다. 미국과 트럼프로서는 김정은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자국의 위상에 맞다. 김정은 역시 북한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과감하게 최대 적국이라는 미국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통큰 행보를 보이는게 외교적 성과일 수 있다.
하지만, 김일성 이후 북한 정상이 서방 진영의 국가를 방문한 전례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2차 남북정상회담이 불발된 이유 중의 하나도, 회담 장소 문제이라는 후문이 있다. 평양에서의 1차 남북정상회담 뒤 남쪽에서는 2차 정상회담을 서울로 제안했으나, 북한은 이를 꺼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은 김정은에게 ‘고수익 고위험’의 장소라 할 수 있다.
평양이나 워싱턴에서의 회담은 또 북-미 양쪽이 사전에 의제 타결에 대한 확실한 보장 등 신뢰구축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도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한 쪽이 문재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업저버의 위치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하는 형식이다. 서울 회담은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더욱 높일 수 있는 기회이다. 하지만, 미국과의 1 대 1 대등한 위상을 고집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회담을 할바에야 워싱턴에서 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도 고려될 수 있다. 판문점은 북-미 양쪽에게 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고, 실용적인 회담을 할 수 있는 최적지이기도 하다. 판문점 회담은 의전에 대한 부담없이 양쪽이 실용적인 회담을 나눌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제3국에서의 회담도 선호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북핵 6자회담의 의장국인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최유력지 후보로 떠오른다. 베이징에서의 회담은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와 개입이라는 플러스 요인도 있다.
베이징 회담은 또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일 수 있다. 중국은 이 회담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북-미 회담 발표를 낳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전후한 남-북-미 접촉에서 중국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국제회담의 본향인 중립국 스위스도 후보 중의 하나로 거론될 수 있다. 스위스의 제네바는 지난 1994년 북미협정이 타결된 곳이기도 하다. 김정은으로서는 외국에서 회담을 해야 한다면 스위스가 가장 부담이 적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스위스는 김정은이 유학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북한과 서방과의 연락을 중개하는 스웨덴의 스톡홀름 등도 후보지로 선정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이벤트성을 고려한 장소가 선정될 수도 있다. 태평양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맺어진 샌프란시스코도 미국이 자국 내에서의 회담을 고집한다면 거론되는 곳이다. 미국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 연안의 도시인데다, 아시아태평양을 향한 미국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의 중간 지점인 태평양에서의 회담도 고려할 수 있다. 하와이나 괌이다. 하와이는 미-북의 중간 지점이고, 괌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한 미국의 역외 자치령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최대 군사기지가 있는 괌은 후보지로서의 가능성이 떨어지기는 하다. 하지만, 성사될 경우, 극적인 이벤트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는 5월로 다가온 정상회담의 장소와 형식을 놓고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등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시 북미 관계 진전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이 회담의 장소와 형식에 자신의 몫을 찾는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