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북한 당국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 둘째)이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배포했다. 연합뉴스
4·27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비핵화 해법에 관한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청와대가 핵폐기와 북 체제 보장을 한꺼번에 주고받는 ‘일괄타결’은 북한에 적용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을 칼로 잘라냈다는데서 유래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든, 일괄타결이든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방식”이라며 “리비아식 비핵화도 지금 북한에 적용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핵 문제는 25년째 진행중이다. 텔레비전 코드 뽑듯이 일괄타결을 선언한다고 비핵화가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며 “핵 폐기와 검증 등의 과정은 순차적으로, 단계적으로 밟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국내 일각에서 내세우는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는 ‘선 비핵화, 후 보상’을 뼈대로 한 일괄타결 방식이다. 존 볼턴 신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내정 사실이 발표되기 전인 지난 19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인터뷰에서 ‘리비아식’으로 북한 비핵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리비아식 방식’을 북한에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미국 내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리비아는 핵 물질을 생산하기도 전인 초기 단계에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반면, 북한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핵 물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 6차례의 핵실험을 비롯해 지난해 11월 말엔 미 본토에 가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할 정도로 핵 능력이 고도화한 상태다. 리비아와는 견줄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
앞서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나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과거엔 제재 완화, 종전 선언, 평화협정 등 점층법으로 대화를 해왔다면 지금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 여러가지 복잡한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어버리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일괄타결 방식의 비핵화’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과거에 비핵화에 이르는 단계를 아주 미세하게 잘라서 조금씩 밟아갔는데 지금은 (5월 정상회담에서 만날 북한과 미국의) 두 정상 간의 합의가 큰 뚜껑을 씌우고 추후 실무적으로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예시를 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르디우스 매듭은 그런 비유였지 일괄타결 방식의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른바 ‘고르디우스 매듭’은 단번에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도 있지만,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도 있다”며 “정세가 바뀐만큼 접근 방식을 과거와 달리할 수는 있겠지만, 북핵 문제처럼 얽히고 설킨 난제는 단번에 풀어내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짚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베를린 선언에서 포괄적, 단계적 해법을 제시한 뒤로 우리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은 바뀐 적 없다”며 “포괄적이란 비핵화 평화체제 남북관계 발전 등을 두루 같이 논의한다는 뜻이고,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단계적 외에는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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